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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연아와 블랙스완(Black Swan,검은 백조)

[취재파일] 김연아와 블랙스완(Black Swan,검은 백조)

김연아가 아이스쇼를 통해 국내 팬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였다. 반짝이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의 몸짓은 마치 백조처럼 우아했고, 모든 연기가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완벽했다.

상식적으로 백조(swan)는 흰색이다. 그래서 블랙스완(Black Swan, 검은 백조)은 '상식이나 기대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존재'라는 의미로 서양 고전에서 은유적으로 쓰였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의 상식을 넘어선 연기..백조 같은 몸짓.. 그녀와 '검은 백조'는 이래저래 많이 닮은 것 같다.

지난 40일 동안 김연아에 대한 나의 상식이 보기 좋게 깨진 세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장면 1] 7월 6일 남아공 더반

김연아가 평창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SBS 뉴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김연아는 "아~힘들어" 하더니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다리를 쭉 펴고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배고프다며 취재진이 권하는 음식을 서슴없이 손으로 집어 먹기도 했다. (당시 테이블 위에는 저녁 식사를 위해 준비해 둔 초밥이 있었다.)  방금 전 IOC위원들 앞에서 여유롭고 완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온 국민이 열광하는 김연아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21살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영어 참 잘 하던데요?"라고 묻자 "잘 못해요. 연습 좀 했어요."

[장면 2] 7월 7일 태국 방콕

평창 유치의 감동에 젖어 대표단과 취재진은 전세기에 몸을 싣고, 방콕에서 2시간 정도 경유했다. 강원도 관계자들과 문화부 인사들은 신이 났다. 서로 악수를 하고 다니며 자축 릴레이를 펼쳤다. 시차 때문에 밤잠 못자고 뉴스를 해야 했던 취재진은 녹초가 돼 있었다. 그 시각 김연아는 대기실 끝 쪽 의자에 누워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화장도 하지 못한 푸석푸석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줄도 모르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매니저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아침부터 갑자기 토하고 고열이 난다고 했다. 한의사 출신인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이 진맥을 하고 지압도 하면서 김연아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김연아는 연습 좀 한 게 아니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이다.

[장면 3] 8월14일 올림픽공원

김연아가 평창 유치를 축하하는 아이스쇼를 열었다. 김연아는 지금까지 시즌이 끝나면 항상 아이스쇼를 했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즐기는 자리인 만큼 시즌 때만큼의 기량을 선보이진 못한다. 물론 시즌때 만큼 많은 연습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평창 유치에.. 방송 진행에.. 연습 시간은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둠속 대형 전광판에 김연아가 나와 메시지를 전한다.

"'평창'하고 불려질 때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고요, 지금 보여드릴 '오마주 투 코리아'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과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하는 연기인 만큼 최선을 다할께요.  여러분 사랑해요."

웅장한 아리랑의 선율이 흘렀다. 반짝이 검은 옷을 입은 김연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작열했다. 환호성이 터졌다. 김연아는 마치 물위를 걷듯 가볍게 얼음을 지쳤다.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은 강렬했다. 3회전 점프를 두 번이나 완벽하게 뛰었다. 중반부 클라이막스인 스파이럴에서는 전율을 느낄 만큼 감동이 밀려 왔다. 

연기가 끝나자 모든 관객이 일어섰다. 한참 동안 환호가 이어졌다.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보여줬던 '오마주 투 코리아' 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저 정도로 연기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녀는 역시 피겨여왕이었다.

올초 극장가를 휩쓴 '블랙스완'이라는 영화가 있다. 연약한 주인공(나탈리 포트만)이 관능미와 힘이 넘치는 '블랙스완'을 연기하기 위해 겪는 심적 고통과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 내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의 연기를 넘어선 경지가 '블랙스완'이다.  김연아의 연기는 '블랙스완'의 경지가 아닐까? 물론 그녀의 프레젠테이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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