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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자격 의사 S&P가 연 판도라의 상자

-왜 금융시장은 요동치는가?

[취재파일] 무자격 의사 S&P가 연 판도라의 상자

국제신용평가 회사 S&P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습니다. 그런데 뒷 말이 많습니다. 미 의회에서는 등급 하락 책정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신용평가 회사가 한 나라나 기업의 신용 등급을 평가하는 이유는 채권자들에게 나라나 기업이 얼마나 갚을 능력이 있는 지를 알려주는 것 입니다. 갚을 능력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게 되면 시장에서 그만큼 해당 나라나 기업은 돈 빌리기 어려워 집니다. 이자를 더 줘야하는 겁니다. 신용 평가 회사의 평가가 맞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10년 물 국채 이자는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락하기 전에 2.56%였다가 이 글을 쓰는 지금(12일) 2.24%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더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셈입니다. S&P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채권 시장에서는 그들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신용평가사에게는 평가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S&P의 미 등급 하락 결정을 비판하는 쪽이 2조 달러 계산을 잘못하고도 무리하게 책정한 것이 '정치적' 이었다는 공격을 하고 미 의회가 조사하겠다고 나선 이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국이 빚 많고 그게 장기적으로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축통화 달러를 갖고 있고 싼 이자에도 너도나도 미국 채권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등급 하락을 결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S&P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장의 신뢰를 많이 잃어  "당신들이 누구를 평가할 자격이 있냐" 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S&P는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기 한 달 전에 리만브라더스를 투자적격인 A 등급으로 책정을 했고, 모기지 관련 파생 채권들에 대해서도 최상위 등급인 AAA를 매겼었기때문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엔론에 대해서도 역시 그 직전까지 투자적격 등급 A를 부과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S&P가 등급을 매겼던 35년간 기록을 추적해 봤더니 부도난 지방 정부 15곳 가운데 무려 12곳에 대해서 부도나기 1년 전에 투자적격 등급을 책정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과연 돈을 주고 받을만한 자료인지 심각한 의문이 들게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의 등급하락 결정은 세계 금융시장은 출렁거리게 했습니다. 특히 주식시장은 세계 증시의 도미노 폭락을 불러왔습니다. 그 이유는 S&P가 모두들 걱정하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설마 그럴까 했던  것에 대해 행동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아래 에서 인용한 그래프에서 보듯이 미국의 부채 문제는 사실 심각합니다.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수준에 온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9%가 넘는 미국의 실업률, 그러니까 경기둔화가 단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미 정치권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정부지출을 늘리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도 장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어떻게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년 선거를 앞둔 당파 싸움 때문에 미 공화당은 이를 반대했고, 결국 '세금은 올리지 않고 10년 동안 정부지출만 줄이는' 현재로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회복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던 미국 경제가 더 악화될 수 있는 길로 접어들도록 한 것입니다. 미국이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2분기 연속하는 이른바 '더블 딥' 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2013년까지 미국 기준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앞으로 2년 동안 미국 경제가 좋아질 수 없다는 선언을 한 셈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과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부실을 정부가 떠 앉았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정부 빚이 늘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빚 떠 앉고 돈 풀면서 환부를 일단 덮었을 뿐인데 그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환부가 치유됐다고 생각하고 빚이 만들어 놓은 잔치에서 잘 즐겼습니다. 

그 바탕에는 "미국이 설마 무너지겠어?" "버냉키의 연준이 뭔가를 하겠지" "유럽은 독일이나 프랑스가 무슨 조치든 해서 또 위기를 넘길꺼야" 라는 기대가 깔려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거나 아니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S&P의 미국 등급 하락 결정은 이런 막연한 기대가 깨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투자자들이 문제를 보다 냉정하게 보도록 하는데 기여를 한 측면이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급등락으로 꾸물대던 미국과 유럽의 정치리더십이 움직이기 시작했기때문에 금융시장은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다시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는 착각을 하게 되면 수면 아래에 놓여있던 문제가 불거질 때 또다시 급등락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빚으로 만들어진 거품은 부도가 나거나 일부 채무탕감을 결정하거나 빚을 갚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장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재 상황은 실탄은 부족한 상태에서 단기적으로는 경기둔화를 막고 장기적으로는 빚 해결 계획을 제시해야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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