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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리앙쿠르 락 말입니까?"

[취재파일] "리앙쿠르 락 말입니까?"

독도 문제로 또 다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난데 없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한국행을 강행한 일본 자민당 의원들, 한국 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막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일본 정부는 방위백서를 발간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다시 주장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계획적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속으로는 칼을 가는 일본인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다시 한 번 보여줬습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당했을 때 한국인들이 "밉지만 그래도 너무 안됐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돕고 살 때도 되지 않았나" 하면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정말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던 그들이었는데...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한국 정부도 당연히 엄정한 대응을 강조했습니다.

일본 의원들의 입국을 막고, 방위 백서 발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정무공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정무 참사관을 부르고, 당국자 논평을 냈던 예전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수위라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대응을 지켜보면서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참사보다 계급이 하나 높은 공사를 부르고, 익명의 당국자가 아닌 대변인 명의의 항의 성명이 대단히 엄정한 대응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하는 인상만 줍니다.

사실 개인 관계에서도 한 쪽이 억지를 부르면 당하는 쪽에서는 한 대 패거나 성을 내거나 하다가 억지가 반복되면 아예 대꾸를 안 하거나 하는 수 밖에 없긴 하죠. 그런데 안 보면 그만이면 모르겠지만 싫어도 보고 살아야 하는 사이라면 얘기는 좀 달라지죠... 그런데 이 곳 미국에서 새롭게 확인하게 되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일본이 지난 세월 참 치밀하게도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을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미 국무부 브리핑장입니다. 한 기자가 "최근 한국과 일본사이에 외교적 긴장에 대해서 질문하려고 한다. 일본이 방위백서에서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동해에 있는 섬을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주제이기는 한데 거기에 대해서 논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토너 부대변인이 바로 이렇게 말을 받았습니다.

"널리 알려지기로, 혹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로는 리앙쿠르 락이라고 하는 섬에 대해서 묻는 거죠?" (You're referring to what are broadly known as -- or internationally known as the Liancourt Rocks, I think? )

그러면서 리앙쿠르 락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서로 자제하면서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두 나라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단히 객관적이고 독도문제에 대해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답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리앙쿠르 락이라고 하는 표현 자체가 일본이 의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앙쿠르 락(암석)이라는 표현은 조선시대 독도를 발견했던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를 딴 이름인데, 한국의 영토인 독도의 이미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일본이 국제사회에 퍼뜨린 명칭입니다.

결국 독도가 아닌 리앙쿠르 락이라고 하는 표현이 국제사회에서 공인받고 있다는 뜻이고, 그 것은 일본의 의도가 관철됐다는 뜻입니다. 미국 정부가 철저히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사실상 일본 편이라는 해석도 조금 지나칠지는 모르지만 가능합니다.

이런 해석의 근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가면 전 세계 각 나라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도 있고, 일본도 있습니다. 

                     



한국편에 있는 지도입니다. 동해가 아닌 일본해(Sea of Japan)이라는 부분이 당장 눈에 뜨입니다. 그리고 지도에는 잘 나와 있지도 않은 독도를 굳이 화살표까지 표기해서 리앙쿠르 락이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편인데도 말입니다. 한국이 동맹국이라고 하면 한국편 홈페이지에는 독도라고 표기하고 괄호 안에 리앙쿠르 락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 한국의 최대 동맹국 미 국무부의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 홈페이지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반면 일본편에 있는 지도를 보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해와 리앙쿠르 락이라고 하는 부분은 한국편과 같습니다. 오른쪽 윗 부분을 보시면 쿠릴 열도에 화살표시가 돼있고 길게 설명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1945에 옛 소련이 점유했고, 현재는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인데,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돼 있습니다.

쿠릴 열도는 미국의 지명위원회에도 쿠릴 열도는 러시아령이라고 분명히 돼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러시아 영토로 공인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미 국무부는 일본을 소개하면서 그 지도에 일본의 주장을 친절하게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편과 비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3년 전 여름, 미국 의회 도서관이 독도를 리앙쿠르 락으로 바꾸려 한다는 움직임이 일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의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 미국쪽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표현으로 바꾸려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동맹국인 한국과 한국인들의 정서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시도였고, 결국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던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원상 회복을 지시하면서 간신히 파문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천안함이 침몰한 이후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서해와 동해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동해가 아닌 일본해, 서해가 아닌 황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당시 제가 리포트를 하면서 많이 알려졌고, 많은 분들이 분노의 댓글을 달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미 국무부 홈페이지의 한국편과 일본편을 다 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의 독도 외교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을 했었습니다. 동해와 독도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미 국무부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글에는 최소한 병기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해왔습니다. 당시 일본해라는 표현에 대해서 크롤리 국무부 대변인일 따라가면서 질문했더니 퉁명스럽게 "나는 국방부가 발표한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자리를 피했던 기억도 납니다.

미국을 미워하거나 화낼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의 독도 외교에 대해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분합니다. 일본을 성토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언제나 엄정한 대응을 강조하고, 일본에게 항의합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독도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면 그 사이에 미국이나 국제기구등을 상대로 독도라는 표현과 동해라는 명칭에 대해서 꾸준히 설득하고 또 설득할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한참 분노하고 성토하다 문득 정신 차려 보면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독도 문제, 이제 근본적인 접근법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에게 있습니다. 정부가 이런 저런 이유로 주저하고 소극적이거나, 혹 수면 밑에서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바뀌는 게 없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이나 국제기구가 알수 있도록 말이죠.

2005년 가왕 조용필 씨의 평양 공연을 취재했었습니다. 그 때 공연의 마지막 노래는 다름 아닌 '홀로 아리랑'었습니다.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게 독도 문제입니다. 그 노래 그대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안부를 묻기 위해서는 독도를 더 이상 외롭게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혹 감정적인 글이었다면 여러분께서 차분하게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기서 만나는 미국인들한테 기회가 닿는대로 독도와 동해에 대해서 얘기할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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