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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호주를 사랑한다면? 캥거루 고기를 드세요!

[취재파일] 호주를 사랑한다면? 캥거루 고기를 드세요!

새끼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따뜻하게 감싸는 유순한 동물로 알려진 캥거루.  호주의 국가 마스코트 대접을 받고 있는 캥거루는 그러나 주 정부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이기도 합니다.

현재 호주에서 살아 가고 있는 캥거루는 줄 잡아 6천만 마리로, 호주 인구가 대략 2천만 명 정도이니 호주인 한 명당 캥거루 3마리씩 딸려 있는 셈입니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캥거루는 아주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야생 캥거루들입니다.

호주를 여행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거나 하이킹을 하다보면 캥거루가 그려진 노란색 표지판을 자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캥거루 보호 구역'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경고의 표지판입니다.



그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선 '로드 킬(Road Kill)'이 많으니 특히 야간 운전 시 캥거루가 차로 뛰어드는 걸 조심하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호주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가운데 60%가 캥거루와 관련된 사고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인적 드문 곳에서 '못 된' 불량배 캥거루 만나면 '공연히 얻어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입니다.

야생 캥거루는 다 자랄 경우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에 육박하고 몸 길이도 2미터나 돼 보통 어른보다 휠씬 덩치가 큽니다. 물론,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먹이에 굶주려 있거나 뭔가에 자극을 받아 성질이 날카로울 때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9미터까지 튀어 오르는 가공할 점프실력을 무기로 앞발로 사람을 후려치거나 뒷발로 튀어올라 배를 걷어찰 경우엔 목숨을 잃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무려 8명이나 캥거루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들어 온 외신에도 '캥거루의 묻지마 주먹질' 관련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퀸즐랜드에 사는 올해 아흔 넷, 고령의 할머니가 집 앞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캥거루 한 마리가 다짜고짜 할머니를 걷어 차 땅바닥에 메어 꽂은 뒤 마구 짓밟았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할머니가 곁에 있던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했고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 온 아들이 후춧가루 스프레이까지 뿌려 댔지만 흥분한 캥거루는  오히려 더 날뛰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경찰관 두 명도 발길질을 당한 끝에 가까스로 캥거루의 난동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비단 인간에 대한 공격이나 교통 위험 때문에만 캥거루가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주의 환경학자들은 얼마 전부터 다소 황당하게 들릴 법한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호주를 사랑한다면, 호주의 환경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캥거루 고기를 드세요."

동물 보호 단체들은 물론 반대하겠지만, 나름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주장입니다. 어쩌다 호주의 마스코트인 캥거루가 '식용(食用)' 대상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걸까요?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의 주 원인이 바로 농장에서 기르는 소, 양 등 가축들이 내뿜는 트림과 방귀 등에서 나온 메탄가스로 지목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온실가스 주범인 소, 양의 대안 가축으로 바로 캥거루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 정부 기후변화 수석 자문위원 로스 가너 박사는 최근 지구온난화 관련 보고서를 통해 포유류가 아닌 유대류인 캥거루는 소나 양에 비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은 메탄가스를 배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너 박사는 한 술 더 떠서 "최근 몇 십 년을 빼고 호주의 인류 역사 6만 년 동안 캥거루는 주 육류 공급원이었으므로 다시 식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캥거루의 식용은 호주 문장(紋章)에도 새겨질 정도로 역사가 깊다고 합니다. 호주의 대표 동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만, 웰빙주의자들은 영양학적 가치 때문에 이미 캥거루 고기를 널리 즐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캥거루 고기는 지방에 비해 단백질 비율이 월등하고 대부분 방목해서 기르거나 야생에서 살기 때문에 자연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너 박사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20년경엔 소와 양의 숫자는 각각 7백만 마리와 3천6백만 마리로 줄어들고 대신 캥거루는 2억4천만 마리로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호주 정부도 캥거루 고기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조심스럽게 소비 촉진을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호주에 여행갔다가 캥거루 스테이크나 캥거루 스튜를 맛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데, 양고기 처럼 특유의 냄새가 있지만 양념만 잘하면 소고기 보다 휠씬 육질이 부드러운 캥거루 고기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말 나온 김에 호주에서 요즘 급부상하는 차세대 새로운 먹을 거리를 하나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바로 낙타 스테이크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단일 국가로 낙타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사막이 많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을 떠올리시는 분들 많으시겠지만 의외로 정답은 호주입니다. 사실 낙타는 원래 호주의 토종 동물은 아니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광활한 사막에 풀어놓기 위해 수입됐습니다. 하지만 일단 신 대륙에 발을 들여 놓은 낙타는 천적도 인적도 없는 호주 사막에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는 약 1백만 마리에 이릅니다. 요즘에도 매 9년마다 두 배씩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낙타가 호주 사막의 물 공급원과 각종 희귀식물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낙타 스테이크'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낙타 고기 역시 맛이 소고기와 비슷하고 영양가가 풍부해 식용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먹어 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입니다.

그렇다고 낙타를 식용으로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낙타들이 주로 인적 드문 사막에 퍼져 있는 까닭에 식품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막에 수송 도로를 포함한 인프라를 갖추고, 또 멀지 않은 거리에 도살 시설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캥거루와 낙타를 목장 우리 안에 가둬두고, 사료 먹여가며 키우는 장면이 쉽게 상상이 안되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가능한 광경일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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