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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정한 '2초' 그녀, '고지전'의 배우 김옥빈

북한군 저격수 된 김옥빈, 짧지만 강렬한 배역

[취재파일] 진정한 '2초' 그녀, '고지전'의 배우 김옥빈

불과 60년 전 어마어마한 전쟁을 겪은 탓에, 우리의 현대 전쟁 영화는 모두 6.25를 소재로 합니다. 그 가운데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기억되는 영화는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입니다. 전쟁과 형제애를 다뤘던 이 영화는 관객 천만 돌파라는 기록도 세웠었죠.

저는 군대도 가보지 않았고,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의도나 나의 행동과 관계없이 생명과 생활이 위협받는 그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게 될 텐데, 그게 바로 '전쟁' 상황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쟁을 다룬 영화는 피비린내 나도록 사실적인 전쟁 장면 묘사와 함께, 그 속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인간애를 빠뜨리지 않고 담고 있습니다.

지난주 개봉한 <고지전>도 이런 공식을 그대로 따른 전쟁 영화입니다. 전쟁 막바지, 국경을 결정지을 고지를 놓고 벌이는 극한의 대립. 하루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지루하면서도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군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이번에도 참여해서인지, 아군과 적군 사이 인간적인 우정도 나오고요. 영화 속에서 군복을 입고 나오면 그 영화는 언제나 '대박'이라는 신하균 씨, 꽃미남 이미지를 벗고 연기파 배우로 거듭한 고수 씨, 언제나 감초 연기가 훌륭한 고창석 씨의 연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영화 <파수꾼>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제훈 씨는 '앞으로 많은 영화에서 만나보게 되겠구나' 예감하게 하는 연기를, 막내 이다윗 씨도 반짝반짝 빛나는 신인 배우가 나왔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전쟁 영화의 주역도 거의 다 남자 배우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성이 나오더라도, 사랑하는 아버지나 남편, 아들이 참전했다 죽거나 다치거나, 혹은 적군에게 붙잡혀 변을 당하는, 2차 피해자일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번 <고지전>에서는 일반적인 이런 여성과는 다른, 특이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2초'가 그 주인공이죠. (이 '2초'는 시간 개념의 그 '2초'가 맞습니다. 자세한 '2초' 얘기는 영화를 통해서 보시길...) 이 '2초' 역할을 맡은 배우는 영화 <박쥐>의 헤로인, 김옥빈 씨입니다. 언제나 강렬한 역할을 도맡아 하는 듯한 여배우입니다. <고지전>에서도 남자 군인들과 함께 전장에서 뛰어다니는 여자 군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남자 배우들과 비교하면, 정말 '잠깐'에 불과할 정도로 배역이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 어떤 배우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보니, 그 강렬한 모습은 실제로도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우선 늘씬하고, 인형 같이 예쁜 외모에, 다음 영화 캐릭터 때문에 염색한 분홍색 머리가 제압을 했고요. 인터뷰를 하면서는 거침없고 솔직한 말투에 한 번 더 놀라게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지 않고, 솔직담백한 대답을 내놓으니 오히려 인터뷰 하는 사람이 약간 당황하게 되더라고요. 그야말로 '2초'만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을 가진 '2초 여인'이었습니다. '참 친해지고 싶은 친구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여배우, 앞으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겨보려고 합니다.

아래는 이 '2초 여인'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 <고지전>에서 역할을 좀 설명해 주세요. 보통 전쟁 영화에서 여성은 2차 피해자로 등장하는데, 이번 역할은 좀 다르다고요?

= 저는 전쟁에서 북한 인민군 저격수 역할을 맡았고요. 그리고, 2차 피해자라기보다는 1차원적인 피해자입니다. 여자 군인 역할을 보자면, 전쟁 속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가 끼어있는 거잖아요. 사실 전쟁하다보면 여자이든 남자이든, 굉장히 많은 인원이, 남녀노소 다 끌려가서 전쟁이라는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 속에서 있는 인물 중 하나죠.

- 군대 경험도 없고, 전쟁도 겪지 않은 세대라 역할을 표현하는 데 좀 힘들었겠어요?

= 억지로 군인의 모습을, 잘 훈련된 모습의 저격수를 표현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전쟁이라는 참상에서, 스나이퍼라는 능력 때문에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희생되는 캐릭터죠. 오히려 이 전쟁이란 것을 어려서부터 아무렇지 않게 겪어왔기 때문에 공격적이 되고, 사람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일상 생활처럼 되어버린 어린아이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 아무래도 훈련하고 사격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요.

= 실제 영화 속에서 나오는 총이요, 제가 들고 다닌 총이 굉장히 커요. 전체 남자 배우를 통틀어서 무게, 크기가 제일 큰데요, 그 총이 또 안에 실탄이 들어가서 사격을 하게 되면 소리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래도 일단 저격수, 스나이퍼라는 특성상 굉장히 차분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래서 방아쇠를 당길 때도 눈을 뜨고 하는 연습도 했고요. 군대는 안 갔지만, 남자들이 하는 엎드려 쏴, 앉아서 쏴 하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교육 받았어요.

- 항상 캐릭터 선택이 좀 특이한 것 같은데, 옥빈 씨만의 기준이 있나요?

= 저는 의외로 단순해요. 제가 역할을 선택할 때 기준은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읽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끊지 않고 읽었는가' 예요. 중간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손은 잠시 놨다가 다른 짓했다가 했던 건, 제가 스스로도 집중을 못했었고, 또 받아들이지 못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이걸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하고 싶다고 얘기하죠.

- 지금까지 출연작 전부 그랬나요?

= 지금까지 안 그런 것도 있었어요. 제가 신인 때는 원하지 않았던 한 캐릭터도 있었는데요, 그건 나중에 영화를 보고 제가 느끼기에도 정말 슬펐어요. 왜냐하면 '내가 싫어서 원하지 않아서 즐겁게 참여하지 않았구나' 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나한테 이렇게 보이는데, 관객들은 얼마나 잘 알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궁금해서 나중에 '옥빈 씨가 하기 싫었던 영화는 도대체 뭐였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얘기해도 되나' 하면서도, 옥빈 씨답게 주저없이 답하더라고요.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흥행 참패를 했던 영화였는데요, 사실 저도 안 본 영화였습니다. 옥빈 씨의 '슬픔'이 보이는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 이번 영화 <고지전>은 관객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요?

= 엄청나게 큰 스케일로 밀어 붙이는 영화라기 보다는요, 사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던 비극적인 공포잖아요. 우리는 아직 전쟁 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편하게 살고 있는데요, 이 영화를 통해서 과거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 겪지 말아야 할 전쟁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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