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첩보가 들어오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의 팀별 회의 시간. 팀원들도 힘들겠지만 이 시간에 뭔가 나오지 않으면 팀장인 나도 이후 대장과 함께하는 회의에서 면이 안 선다. 이 형사가 뭔가 정리된 종이를 슬그머니 내놓는다. "돈을 내면 오바마 미 대통령 명의의 봉사상을 준다는데요, 아무래도 사기 같습니다." 촉이 온다. "재밌는데? 미 대통령이 쉽게 상을 줄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오바마 상이라고 해도 봉사도 한 적 없으면서 탔으니까 외국 기관을 속인 거 아냐? 일단 조사해 보자고. 이 형사는 첩보 제공자한테 구체적으로 내용 좀 들어보고 저쪽에서 눈치 못 채게 주변 조사 해보고. 김 형사는 자료 좀 모아봐."
며칠 뒤 김 형사가 한 신문을 들고 온다.
"봉사 단체가 주도하고 있네요. 수석 단장에는 언론사 대표이사, 멘토에도 언론사 이사장과 전 육군대장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거 사기 맞을까요?" 몇 면을 털어서 쓴 기사엔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쓴 격려사와 축사도 잔뜩 들어있다. 하지만 아직 의심을 거둘 순 없다. "일단 봉사단체 쪽에서는 냄새 맡지 못하게 하고, 격려사와 축사 쓴 쪽도 확인은 해봐야겠네. 실제든 아니든 이 정도면 속아 넘어갈 만 하겠구먼."
첩보를 받은 이 형사가 끼어든다. "제보자는 이 상이 있으면 해외 뿐 아니라 국내 대학에서도 입학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답니다. 여러 학교와 교과부 등에 확인했는데 전혀 고려하고 있는 상이 아니라던데요? 그런 건 자기들도 처음 들었답니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그래. 의심쩍은 게 많으니 적당히 묻을 순 없잖아. 김 형사는 저 신문에 나오는 단체는 뭔지, 그 상장에 나온 단체는 뭔지, 이런 자료도 더 모아보고."
# 기념품의 발견.
"팀장님!! 찾았어요. 찾았어!" 또 김 형사다. "이거 기념품 같아요!" 오바마 상이라 나눠 줬던 상장과 메달. 그것과 거의 흡사한 기념품을 팔고 있는 사이트를 찾은 거다. 이 형사가 웃으며 말한다. "상장에 president's challenge라고 써 있길래 자세히 봤더니 밑에 영어로 어이없는 말이 써있더라고요. The Presiden's Challnge is a program of the President's Council on Physical Fitness and Sports,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엄청 굴리는구먼. "흠흠.. 그래서?"
이 형사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알아보니까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단체에서 주는 거였어요. 신체적 적성과 스포츠에 관한 대통령위원회, 뭐 이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결국 봉사상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먼 겁니다." 흥분한 김 형사가 덧붙인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에 딱 쳐보니까 사이트가 하나 뜨더라고요. 그래서 봤더니 그 샵에 떡하니 이놈들이 있네요. 흐흐. 팀장님. 상장은 85센트에 메달은 7달러입니다. 하하" 그래도 또 모른다. "김 형사. 일단 김 형사 집으로 저걸 한 번 사봐. 실제로 똑같은지 한번 보자고"
# "그럴 리가요!"
얼마 뒤 도착한 상장과 메달은 피해자들이 오바마 상이라고 받은 것들과 똑같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품질이 더 좋았다. 피해자들을 접촉해보자. 쉬울 줄 알았던 피해자 조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럴 리가요! 여기 오바마 대통령 사진도 있잖아요. 뉴욕에서 행사까지 열고 체류비로 얼마를 냈는지 아세요? 잘못 아신 걸 거예요." "에이, 봉사단체 하시는 분인데 그분이 그럴 리가 없어요." 피해자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피해자 29명의 조사가 이뤄지면서 그들의 사기 행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 봉사단체 사람들은 지난해 12월쯤부터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이른바 '스펙 쌓기'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주 표적이었다. "이 상을 받으면 연고대는 물론이고 미국 대학도 장학금 받고 들어갑니다." 자녀 교육에 온갖 열성을 보이는 우리나라 부모가 그 말을 듣고 어찌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단지 참가 경비가 좀 많이 드는데…. 우리도 아이를 대상자에 넣으려면 비용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요." 학생들뿐이 아니었다. 나름 영어도 할 것 같은 변호사와 사업가들도 속았다. "오바마 상 딱 걸어놔 보세요. 사회적으로 명예 얻지,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어요." 오바마 상이 거의 마패 수준이다. 5백만 원에서 천 5백만 원까지 1억 2천만 원이나 뜯겼다.
# 그놈의 스펙.
관련자 7명을 입건했다. 봉사단체 운영자금을 만들려고 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사건은 잘 해결됐고, 언론의 관심도 받았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평소 피지 않는 담배를 빌려 펴서 그럴까?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서로 자신을 치장하느라 난리다. 아이에게 들어보니 수시 입학이 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튀는 경력이 필요하다. 봉사, 이 단어가 요즘 아이들의 입시에서 얼마나 좋은 수식어로 쓰이고 있는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차 끌어줘야 대접받고 당당하다. 좋은 직장은 물론이고 어려서 못 배웠으면 어떤 과정이든 일류 대학에서 운영하는 과정을 듣고, 할 수 있는 만큼 학벌 세탁도 해본다. 실제로 진실한 마음에서 봉사하고, 학업에 욕구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조폭 세력 다툼으로 인한 대형 쌈박질, 고위 공직자의 금품 수수 같은 사건 보다 이런 사건을 할 때 더 씁쓸한 건 대부분 사람들의 조금은 비틀어진 심리가 함께 나타나있기 때문일 거다. 이번 사기는 이런 욕구를 맞춰줬을 뿐이고, 사람들은 쉽게 몰려든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수사 초기 나왔던 격려사와 축사 쓴 곳들을 조사해보니 어떤 단체인지 전혀 몰랐단다. 단지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곳인 줄 알았단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글을 써줄 때, 해당 단체나 행사에 대해 별 조사도 없이 좋은 취지의 행사 같으면 글을 써준다고 한다. 물론 바쁘신 분들이니 하나하나 확인하기 힘들겠지만, 그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속은 건 어떻게 책임을 지려는 건지…
오늘따라 담배 맛이 쓰다.
**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렸습니다. 중간 중간 픽션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팩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쓰고 나니 부끄럽지만 좋은 수사를 한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를 생각하며 올려봅니다.
[취재파일] '오바마 상' 사기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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