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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거마대학생…88만 원 세대의 슬픈 자화상

[취재파일] 거마대학생…88만 원 세대의 슬픈 자화상
여러분, 거마대학생들을 아시나요? 처음 접하면 실제 대학생인가보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에서 활동하는 20대 다단계 판매원들을 인근 주민들이 부르는 말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대학생도 많지만, 직장인이나 무직자, 주부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다만 대학생 정도 되는 나이대에, 여러 명이 기숙사에서 합숙하고, 하루 종일 교육을 함께 받는 모습이 대학생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송파구 일대에만 600여 곳의 다단계 업체에서 무려 5천여 명의 거마대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들 대부분은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고요.

이들이 빚더미에 오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단계 업체들은 처음 오는 젊은이들에게 한달 1천만, 억대 연봉을 보장한다면서, 판매할 제품구입비 명목으로 800만 원 정도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다단계를 찾은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그런 목돈을 쥐고 있을 리 없죠. 다단계 업체는 이런 젊은이들에게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로부터 고금리 대출을 알선하는데요, 대부분 복리다 보니 몇 개월만 지나면 빚이 천만 원대로 훌쩍 늘어나는 겁니다. 다단계와 고금리 사금융이 20대의 고혈을 짜 윈윈하는 구조입니다.

빚을 내고 본인이 사놓은 다단계 제품을 시중에서 팔지 못한 피해 젊은이들은 늘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친구 등을 다단계로 끌어들이고, 결국엔 신용불량자나 유흥업소 접대부 등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단계 과정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 밤 11시에 잠이 들 때까지 12시간이 넘는 교육을 받고 교육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다단계에 끌어들일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이탈을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빼앗고 외출을 통제하는 등 철저한 감시 속에서 생활합니다.

20대 초반이면 한창 연애도 하고, 놀러도 가고, 꿈도 많이 꿀 시기일텐데 이들은 왜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 다단계 교육장으로 모인 걸까요.

젊은이들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건 한 마디로 '돈' 때문인데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휴학생부터, 정규직업을 구하지 못해 조그만 자영업을 해보려는 사회 초년생까지 사연은 다양합니다.

한 학생은 한 한기 등록금 500만 원을 벌려고 다단계에 들었다가 800만 원의 빚만 졌습니다. 이 학생은 이 빚을 갚으려고 지금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다음 학기 복학도 불투명하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들은 다단계 범죄의 피해자(혹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낳은 소위 '88만 원 세대'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성적 줄세우기에 치이고, 대학에선 등록금에 눌리고, 졸업해선 비정규직 외에는 취직할 데도 없고요.

꿈이 싹을 틔울 기반이 없으니, 그 빈자리엔 돈이면 다 될 거라는 물질 만능주의, 친구의 등을 치든 어쩌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뿌리를 내립니다. 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이런 계층이 누적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심지어 '도리마(通り魔, 묻지마 살인)'와 같은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집단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다단계를 단속하고 젊은이들을 꾸짖기에 앞서, 수천 명이 왜 그곳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한 사회적인 성찰, 반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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