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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폭염에 지쳐…알 못 낳고, 젖도 줄어

[취재파일] 폭염에 지쳐…알 못 낳고, 젖도 줄어

섭씨 33도를 넘는 폭염 속에 농사일을 하던 고령의 할머니 세 분이 지난18-19일 잇따라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천안과 아산,그리고 해남에 사시던 분들인데요, 대부분 불볕 더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현장에서 사망했거나 병원으로 후송돼 집중치료를 받다가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다발성 장기 기능부전. 의사들은 할머니들의 간, 신장, 심폐 기능이 크게 떨어져 결국 숨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열사병으로 숨진 경우 말고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5일 사이 전국에서 16건의 온열 질환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열탈진 10건, 열경련 2건, 열실신 2건 등인데, 절반 가량이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 집중됐고, 장소별로는 13건이 집밖에서였습니다.

흔히 더운 정도를 표현할 때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하는데 호흡 곤란으로 숨질 수 있기에 그런 실감나는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요즘 한낮 시간대에 밭에서 일을 하기는 젊은 사람도 힘든 상황입니다. 10여 분만 뙤약볕에 노출돼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속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입니다. 특히 농민들이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며 밭을 매는 지표면쪽 온도를 재보니 지상 1미터 온도보다 5도 가량 높아 38-39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농민들은 새벽 5시쯤 들에 나가 9시까지 오전 일을 끝내고, 땡볕의 기세가 좀 수그러드는 오후 5시쯤  다시 논밭으로 가서 저녁 8시까지 나머지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덥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건강 상하지 않고 여름 농사를 짓기 위해 지혜를 짜낸 것이죠.

폭염에 고통을 받기는 사람뿐 아니라 가축도 마찬가지더군요. 아니, 가축이 훨씬 더 심하게 느낀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써서 갖가지 더위 피하는 방법을 동원하지만 축사에 갇혀있는 가축이야 주인이 손을 써주지 않는 한 별 방법이 없지요. 더군다나 대부분 밀식 사육을 하는 현실이다보니 사정이 더 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치킨용 닭을 키우는 양계장에는 축사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부화한 지 3-4주 가량 되는 닭들이 빼곡히 사육되고 있습니다. 대형 선풍기를 24시간 틀어 환기를 시켜주지만 온도는 33도 가량 됐습니다. 비용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선풍기를 돌려도 온도를 낮추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급기야 폐사하는 닭들도 하루에 수십 마리에서 백여 마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육계뿐 아니라 알을 목적으로 키우는 산란계들의 경우도 닭장에 갇혀 밀식 사육되고 있는데요,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 산란율이 20% 가량 떨어졌다고 농민들은 말합니다. 더위에 지쳐 잘 못 먹다보니 알을 못 낳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요.

덩치 큰 돼지나 젖소들도 대표적으로 더위에 약한 동물입니다. 생육에 알맞은 적정 온도가 25-6도 가량인데, 요즘처럼 33-4도까지 치솟으면 입을 벌리고 헉헉대고 침을 질질 흘리며 힘들어합니다. 선풍기만 의존해선 안 돼, 얼음을 먹이고 찬물을 뿌려주느라 농민들은 밤낮없이 비상입니다. 이래도 돼지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 경우 관장까지 시켜준다고 합니다. 돼지는 축사 온도가 35도 이상 계속되면 폐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몸무게가 600~700kg이나 되는 젖소들은 불볕 더위에 식욕이 뚝 떨어져 축산 농민들의 속을 썩이고 있는데요, 비타민 포함 갖가지 영양제를 사료에 섞어 먹여도 워낙 더운 날씨라 젖소들의 입맛을 돋우기가 어렵습니다.

젖소들은 하루에 두 번 대개 오전 5시30분과 오후 5시30분쯤 젖을 짭니다. 한 마리 당 산유량이 하루 30kg 가량 되는데 요즘은 20kg 남짓하다고 합니다. 젖 생산량이 무려 30%가량 줄어든 것이죠. 축산 농가에서 산유량 감소는 곧바로 우유 부족으로 이어져 요즘 대형 마트마다 우유회사들로부터의 공급량이 주문량에 비해 70-80% 가량에 불과합니다. 젖소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줄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빚어지는 상황인 것입니다.

폭염 피해를 줄이려면 근본적인 사육 방식의 전환이나 냉방 설비등이 필요하지만 어느 것 하나 당장 적용할만큼 형편이 좋지 못한 축산농가의 현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장마로 인한 수해를 겪고 폭염까지 위세를 떨치며 농민들에겐 어느 해보다 힘든 여름이 될듯합니다. 그래도 좋은 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고, 약간이라도 여유를 간직한 채 말못하는 가축과 함께 건강한 여름나기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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