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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이돌 '코리안 드림'

[취재파일] 아이돌 '코리안 드림'

1992년 2월,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아이돌 팝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공연. 1만6천 명이나 되는 10대 소녀 팬이 몰려 '뉴 키즈'를 외쳤습니다. 너무나 열광한 나머지, 스탠딩석에 있던 팬들이 서로 밀치며 무대 쪽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다, 그만 일부 관객이 넘어지면서 다른 팬들에게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1명은 숨지고, 100명이 넘는 소녀들이 부상해 실려나가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그런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나머지 1만 명이 넘는 팬들은 공연장에 남아 여전히 '뉴 키즈'를 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도 한 때 외국 팝가수에 미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패션과, 외모가 최고였고, 그들이 곧 우상이던 시대였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우리 대중문화가 일본과 중국을 넘어 동남아를 정복한 지는 이미 10년 정도가 되었고, 이제는 국지적이기는 하지만 유럽과 미국 대륙까지 넘나들고 있습니다. 세계 팬들은 플래시 몹까지 펼치며 우리 가수들의 공연을 열어달라고 염원하고 있고, 우리 가수들의 춤과 노래, 패션까지 따라하는 '커버댄스'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마다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바람은 단지 가수를 좋아하고 따라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직접 케이팝에 뛰어드는 팬들도 많아졌습니다. 케이팝 팬에서 케이팝 주자로 나서는 것입니다.

* 외국인 아이돌의 역사

외국인 아이돌 멤버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05년입니다. 선두주자는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입니다. HOT, 베이비복스, 장나라 등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한류 1세대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실제로 중국인 멤버까지 영입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저도 2006년 초, 갓 데뷔한 신인이었던 슈퍼주니어를 취재하러 갔었습니다. 당시 가수 비가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 가수들도 해외 진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슈퍼주니어는 중국인 멤버 한경도 있었고, 데뷔 전부터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멤버 최시원 씨도 있어서 취재를 했었던 것이었죠.

당시 한경 씨는 "아시아 최고의 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었는데, 실제로 슈퍼주니어는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팀이 되었고, 멤버들도 개인적으로 다들 성공을 했죠. 

               


- 2006년 2월 취재 당시, 슈퍼주니어 한경과 인터뷰한 모습입니다. 이때만 해도 완전한 신인이었는데, 이제 슈퍼주니어는 한류 선두주자가 됐죠. 물론 지금은 한경이 더 이상 멤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외국인 멤버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 가운데에서 절정에 선 사람은 바로 2PM의 닉쿤입니다. 닉쿤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한국인 멤버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태국 현지에서는 완전한 VVIP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 지난 2009년 2PM이 태국에 방문했을 때 닉쿤과 태국 총리가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 거의 국빈급 대접을 받았다고 하네요.

요즘에는 외국인 멤버가 한 명이라도 끼지 않은 아이돌 그룹이 없을 정도입니다. 에프엑스의 빅토리아는 중국인, 앰버는 미국인이고요. 미쓰에이의 지아와 페이는 중국인, 유키스의 알렉산더도 중국인입니다. 최근 데뷔한 7인조 여성 아이돌 라니아에도 태국인 조이가 속해 있습니다.

이런 외국인 멤버들은 어렸을 때부터 한국 가요와 가수를 듣고 보고 자란 세대로, 대부분 우리 기획사들의 현지 오디션을 통과해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거친 뒤 한국에서 데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대형 기획사들은 중국, 일본, 태국, 러시아, 미국에서까지 비정기적으로 오디션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수천 명씩 몰릴 정도로 한국 가수에 대한 열망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 외국인 아이돌의 생활

제가 만나본 라니아의 조이도 태국 오디션 1등 출신입니다. 지난 2009년 오디션에서 무려 3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뒤에 한국에서 2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거쳤습니다. 한국에서 데뷔하겠다는 꿈을 안고 태국에서부터 한국어 공부와 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지금은 살짝 비문을 말할 때도 있지만, 인터뷰도 척척 해낼 정도로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운 김치를 아무렇지 않게 먹고, 고기를 상추에 싸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한국 소녀가 다 된 것입니다. 조이는 같은 나라 출신 닉쿤처럼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데뷔하는 꿈을 이뤘으니, 이제는 자기 나라에서도 성공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 조이는 정말 한국말을 잘합니다. 조이는 한국에서 데뷔하고 싶어서 태국에서부터 밤늦게까지 한국 가요를 들으며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 2009년 태국에서 열린 오디션입니다. 조이는 이 오디션에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불렀는데요, 결과는 1등. 그 길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이런 조이도 또 다른 외국인 연습생들에겐 꿈같은 존재입니다. 중국인 고몽녀는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꿈을 안고 아예 학교도 한국으로 진학했습니다. 한국에서 방송과 관련한 대학원을 다니며 3년째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어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고, 부족한 춤과 노래 연습을 밤늦게까지 하고 있습니다. 고몽녀는 "한국이 대중음악 분야를 이끌고 있다. 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은 한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에서 데뷔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오는 외국인 멤버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이들이 받는 비자는 E6-1, 공연흥행 비자입니다. 이 비자를 받으면 연예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전속사와 계약서와 문화체육관광부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중앙정부 부처장의 추천서가 있으면 발급이 되는데요, 최대 2년 기간으로 비자가 발급되는데, 연예활동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2년 마다 갱신을 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5월까지 법무부에서 이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800명 가까이 됩니다. 문화부에서 추천서를 받아가는 외국인도 점점 늘고 있는데요, 지난해 상반기까지 14건이었던 데 비해, 올 상반기에는 32건으로 무려 2배 이상이 늘었습니다. 외국인 아이돌 멤버가 점점 늘고 있는 것입니다.

* 외국인 아이돌의 명과 암

기획사들은 가수 기획을 하면서부터 '한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외국인 멤버 영입이 필수로 꼽힌다고 말합니다. 라니아가 속한 기획사 대표 윤등룡 씨는 10년 전 베이비복스를 중국으로 진출시켜 성공을 거둔 한류 1세대 선두주자입니다. 그 때 느낀 점이 "외국인 멤버가 있으면 현지화가 쉽다.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 그룹에 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만큼 더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현지 오디션을 하면서 될 성 싶은 외국인 멤버를 물색해왔다고 합니다.

물론 외국인 멤버들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낮선 문화에 적응하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어와 음식, 생활 방식까지 모두 다른  데다가, 가족이나 마음 통하는 친구도 없는 곳에서 정글같은 연예계 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기획사 관계자들은 외국인 멤버들은 사고방식이 확실히 달라서 한국인 멤버보다 '끈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연습이 길어지거나, 육체적으로 힘들게 되면, 참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고 하네요.

이런 문화적 차이와 소속사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아이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슈퍼주니어의 한경은 법정 분쟁까지 겪으면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중국인, 일본인 멤버까지 영입해 글로벌 아이돌이 되겠다던 에이스타일은 무한 경쟁 한국 가요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유키스의 알렉산더도 갖가지 소문을 남기며 탈퇴했고요.

* 외국인 아이돌의 미래

지금도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외국인 연습생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케이팝 열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이제는 아시아권 뿐 아니라, 중동, 유럽 쪽에서도 하나 둘 지망생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조금은 더 이국적이지만, 기획사들도 좀 더 진출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중동계, 유럽계 멤버 영입도 조금씩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코리안 드림'이 단지 외국인 멤버들이 고국에서 연예계 진출의 발판으로만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가수로서 전 세계 진출을 위한 큰 꿈으로 이어져 진짜 '한류', 우리 대중문화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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