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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판 벌이고, 눈 감아주고?

관광객이면 다야?

[취재파일] 판 벌이고, 눈 감아주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어김없이 잠수교 남단 올림픽대로에 자리잡는다. 잠수교가 언제 잠기느니, 차가 언제부터 통제되느니 등등 비 때문에 도로상황이 말이 아니라는 얘기를 '쌩(Live)'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의는 바짝 걷어붙이고 적당히 비 좀 맞으면서 폭우 분위기를 물씬내며 현장 상황을 전한다. 온몸을 적시는 빗물과 신발 속 축축한 느낌에 적당히 익숙히지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단, 밥 먹는 일을 빼고는 말이다.

올림픽대로 한 복판에서의 식사!  최남단 마라도까지도 손길이 미친다는 대한민국 배달 문화의 진수를 이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폭우를 뚫고 달려온 철가방 속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짜장면과 짬뽕.

'먹는다'라는 표현보다는 '마신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허기를 달래고 담배 한 대 물면... 이 게 바로 한강변에서 즐기는 최고의 만찬이다. 곧 다시 시작될 중계차 리포트의 압박도 잠시 잊을 정도의 포만감! 이렇게 강변에서 즐기는 만찬이 '제 맛'이라는 사실을 이미 중국 관광객들도 알고 있었다.

특히 폭우 속에서 즐겨야 제대로 된 만찬이라는 것도 말이다. 지난 3일, 오늘보다 장맛비가 거세 한강 둔치가 잠긴 날이었다.

90명에 달하는 중국 관광객들은 한강 망원지구에 위치한 선상 레스토랑을 찾았다.

오후 2시반부터 밤까지 선상 파티 한번 제대로 즐겨보시겠다고 폭우를 뚫고 방문한 것이다. 이미 한 달 전에 예약도 마쳤고, 선금도 지불했으니 폭우에 고립될 수 있다는 주인의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와 함께 파티는 시작됐다. 밤 10시까지 계속된 파티에 유일한 육지와의 연결 통로인 다리가 물에 잠긴 사실도 몰랐다.

다급해진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구조정을 이용한 3번의 왕복 끝에 모두 육지를 밟았다. 영화 '폭풍 속으로'에서 서핑을 즐기는 주인공이야 높은 파도가 치는 폭풍이 좋아 바다에 뛰어들었다지만 이건 빗물에 밥말아 먹을 생각도 아니고 폭우 속에서 만찬을 즐기다가 괜히 소방서 구조대원들만 생고생을 시킨 꼴이다.

안 그래도 폭우에 여기저기 긴급 구조 출동과 침수된 가구의 배수 지원도 해줘야 하는데, 소방서도 말은 안 했지만 은근 어이 없어하는 눈치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비 속에 한강에 갔을까? 또 폭우로 통제된 한강에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을까? 바로 이 부분이 더욱 당황스런 문제였다.

당시 한강 시민공원은 이미 차량 이동과 보행이 모두 통제된 상태였다. 심지어 주차돼 있던 차량도 모두 연락해 이동하도록 조치했고, 차량 주인과 연락이 안 될 경우 견인차를 이용해 이동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던 상황이다.

그런데 중국 관광객 90여 명은 아무런 제지없이 한강시민공원에 들어가 선상 레스토랑을 찾았다. 심지어 8시간 동안 파티를 벌였다. 그런데도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망원지구 센터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강시민공원을 순찰하고, 진입 통제와 배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는 그들이 말이다.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3층 사무실에서는 불켜진 선상 레스토랑이 훤히 보인다. 그래도 망원센터 직원들은 당시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몰랐든 알았든 직무유기다.

덕분에 한강에서는 한밤에 대소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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