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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온천 왕국' 일본의 여름나기

[취재파일] '온천 왕국' 일본의 여름나기
어찌보면 세상은 소름끼치게도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치는 자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섬나라 일본에 지진이라는 재앙을 안겨준 대신 세계 제일의 온천이라는 선물도 함께 선사했습니다. 현재도 67개의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고 열도 대부분이 화산대에 속해 있는 일본에는 온천자원이 풍부합니다.

'온천의 왕국'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온천만 해도 3천 개가 넘고, 그 중에서 숙박시설과 확실한 온천 성분 분석표가 있는 온천만해도 1천 8백 개소를 헤아릴 정도이고 연간 숙박 이용자만 해도 1억 3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온 국민이 온천을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 수에 걸맞게 온천은 이미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고, 어느새 일본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서 온천과 온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온천 문화는 일본의 관광과 음식, 숙박문화를 지탱하는 원류이고, 온천을 뺀 일본의 관광은 관광의 핵심이 빠진 것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목욕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목욕법도 독특해서 깊은 목욕통에 몸을 푹 담가야 합니다. 얕은 욕조에 샤워가 딸린 서구식 욕실은 일본인에게는 욕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의식주의 거의 모든 면에서 기능적인 서구식 생활양식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목욕 문화만은 예외입니다.

일본의 이중적인 문화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한《국화와 칼》에서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의 온천 문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가장 좋아하는 육체적 쾌락들 가운데 으뜸이 바로 온욕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농민도 아무리 천한 하인도 부유한 귀족과 똑같이 저녁마다 뜨겁게 끓인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가장 흔한 욕조는 나무통인데, 그 밑에 숯불을 피워 목욕물이 항상 섭씨 43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목욕통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깨끗이 씻습니다. 그런 다음 물에 몸을 담그고 따뜻함과 느긋함의 즐거움에 몸을 맡깁니다. 마치 태아 같은 자세로 두 무릎을 곧추 세우고 목욕통 안에 앉아, 턱까지 뜨거운 물에 담급니다. 일본인들이 날마다 목욕하는 것은 청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수동적 탐닉의 예술로서 목욕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 가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지게 됩니다.

일본인 특유의 이런 목욕 습관이 생겨난 이유를 많은 학자들은 온난하고 다습한 일본의 기후와 풍토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커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여름은 찌는 듯 무더우며 대륙에서 발달한 차가운 기단의 영향이 강한 겨울에는 추위가 혹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황 성분이 많이 함유된 일본 온천의 효능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온천이 휴양지화 되면서 자연히 '료칸' 같은 주거 문화와 '가이세키 요리'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급 식문화와도 결합됐습니다.

저와 아내도 전에 몇달 동안 조금씩 모아 둔 휴가비를 털어 큰 맘 먹고 일본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만족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 온천 여행은 어르신들이나 젊은 부부들에게나 꽤나 인기있는 여행상품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런 일본 온천 휴양지가 요즘 한마디로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합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쓰나미와 원전 폭발 사고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기나긴 불황의 터널의 끝을 보게 될지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온천 왕국' 일본의 여름나기는 힘겹기만 합니다.

대목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일본 온천 휴양지와 여행사, 각 지방자치단체 관광청에서는 원전 안전지대임을 적극 홍보하는 한편, 여행 상품 가격을 대폭 깎아주며 손님끌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볼거리와 재미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 탕도 개발하고 있는데, 기존의 사케탕, 와인탕, 맥주탕에 이어 요즘엔 '초콜릿 탕'이나 '라면 탕' 같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설들을 온천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평년 같았으면 내부 시설 공사할 틈 내기도 어려웠겠지만 손님이 뜸한 이번 여름엔 그동안 미뤄뒀던 이런 저런 리모델링이나 내부시설 확충에 손을 대고 있는 겁니다.

혹시나 해서, 제가 일전에 다녀왔던 아오모리 지역 온천 여행 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예전 가격의 50~60% 선에서 특가로 판매되고 있더군요. 아울러 여행상품에 보너스 형식으로 일본 식품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먹을거리 시식 행사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통해 공격적인 모객에 나서고는 있지만, 방사능 누출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외국인들이 일본 온천을 찾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아직은 선뜻 마음이 동하지는 않는게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  혹은 근거없고 불확실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옥석을 잘 가려낸다면(?) 저렴한 비용에 융숭한 대접도 받을 수 있고, 덤으로 곤경에 처한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내손으로 돕는다는 뿌듯한 자기 만족까지 얻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겁니다. 뭐든 구하는 자에게만 길이 열리는 법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남다른 성과도 거둘 수 있는 법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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