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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계부채 & 저축은행, 두 폭탄을 왜 키우나?

[취재파일] 가계부채 & 저축은행, 두 폭탄을 왜 키우나?
금융위기 이후 '블랙스완' 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위기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이상한 것(검은 백조)으로부터 초래되며 모두가 아는 문제는 위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으니 경각심을 갖고 대책을 내놓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문제라고 지적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특히 이해 관계자들이 많은 문제는 여론이 조성되고 사회적 압박이 클 때 과감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장의 건전한 감시 기능이 발휘되지 않은 월가와 탐욕스런 투자자들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고, 곧 뭔가가 달라질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그리 크게 개혁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여전하고 다음 번 위기는 지난 번 금융위기 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란 걱정까지 있습니다.

루비니 뉴욕대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2013년에 중국의 경착륙과 미국과 유럽의 경기둔화 등으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반론도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경제학자이니 만큼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도 그런 폭탄이 있습니다. 여론이 그나마 조성된 지금 과감히 제거해야 하는 폭탄 말입니다. 바로 8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부실의 끝이 어딜지 모르는 저축은행 문제입니다.

워낙 사회적 여론과 관심이 높다보니 금융당국도 큰 틀의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한 마디로 이 문제를 '뜨거운 감자' 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의도가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감자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식겠지만 부글거리는 용암이나 폭탄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먼저 가계 부채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8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늦추면서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변동금리 쏠림 현상을 줄여보겠다는 겁니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지난 99년부터 평균 13%씩 늘면서 경제성장률보다 배나 빨리 늘고 있는데 돈줄을 죄면서 오는 2016년까지 현재 5% 수준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갈아탈 경우 소득공제 한도를 500만 원 정도 늘려주고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 유인책입니다. 그런데 당장 싼 변동 금리 이자를 포기하고 이 정도 유인책에 비싼 고정금리 이자로 갈아탈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소득 공제를 늘려준다고 하지만 대상이 3억 원 이하 국민 주택에만 한정돼 있어 실제 중산층 가운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구가 많지 않습니다. 고정금리로 갈아탔는데 앞서 설명한 '퍼펙트 스톰' 이 몰려와 위기 극복을 위해 또다시 저금리 기조로 돌아서면 어떻하냐며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계 대책의 초점이 빚을 줄이겠다는 것보다 현상이라도 유지해 보자는 쪽이어서 빚 문제를 빚을 내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 가구인 소득 하위 20% 가구의 경우 10곳 가운데 3곳 정도가 생활자금 때문에 빚 돌려막기를 하면서 금융부채가 세금 내고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보다 4배 이상 많은 상황에서 빚 상환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대책이 눈에 띄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도권 금융권에서는 대출 옥죄기에 나서 저소득층들은 생활자금을 위해 불법 고리 사금융 시장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큽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사석에서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서면 빚 탕감을 고려해야 될 지도 모른다" 며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 경제연구소들도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을 가계부채를 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부 경제학자들의 제안처럼 아예 지금 빚을 줄여줄 수 있는 대책을 선제적으로 쓰는 것이 어쩌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낭비성이 크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SOC 사업에는 관대하면서 이런 데 돈 쓰는 것은 '포퓰리즘' 이라고 적극 반대하는 분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기는 할 테지만 말입니다.

또 다른 폭탄인 저축은행 관련 대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금융당국은 85개 저축은행에 대해 동시 경영진단에 나서 9월 중순 전까지 퇴출 시킬 저축은행을 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자본 잠식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BIS 비율 1% 미만이고 부채가 자산보다 많으며 경영평가위원회로부터 불승인을 받은 곳이 퇴출 대상으로 확정됩니다. 나머지 저축은행들은 자구 노력 계획서를 내면 최대 1년까지 시간을 줄 예정이고 BIS 비율 5% 이상 저축은행의 경우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금융안정기금)까지 사상 처음으로 정상 저축은행에 투입하며 자본 확충에 도움을 주겠다는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저축은행의 위기는 바로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이 핵심입니다.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채권은 전수조사를 할 때마다 부실 비율이 급증하면서 이미 절반 가까이 부실 채권이 돼 있습니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부실 규모는 계속 급증할 것으로 보는 것이 많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는데 어떻게 저축은행 자구 노력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부동산 PF 사업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건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부산저축은행 사례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똑똑히 알게 됐듯이 현재 대주주의 사금고처럼 돼 버린 저축은행들의 재무제표를 과연 믿을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금감원, 예보, 회계법인이 현장 조사에 나선다지만 금감원은 저축은행 감독 부실 후폭풍으로 인사 물갈이가 되면서 저축은행 검사 경력이 별로 없는 검사역들이 현장에 나서는 것이고, 그렇다고 예보와 회계법인이 마음먹고 분식회계하는 저축은행의 부실을 찾아 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부실 저축은행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경영진단이 된다면 이번 대책은 결국 세금 낭비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과감한 정리를 하게 되면 그만큼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자구노력을 하도록 해서 그 비용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하지만 국민적 여론이 뒷받침 된 지금을 놓치게 되면 선거가 있는 내년이나 내후년 정권 초반기에 과연 부실을 발견한다고 도려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올해가 이 두 가지 폭탄이 더 커지기 전에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물쭈물하다 시기를 놓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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