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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하 기계실에서 일어난 소리없는 죽음

[취재파일] 지하 기계실에서 일어난 소리없는 죽음

지난 토요일 새벽, 경기도 고양의 한 대형 마트에서 냉동기계 점검 기사 4명이 작업 도중 질식해 숨졌습니다.

지난 달에 새로 설치해 시운전을 하고 있던 터보 냉동기였습니다. 기계에서 이상 소음이 들리자, A/S 업체 기사들이 새벽 0시부터 점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업장은 지하 1층 기계실. 작업을 총괄했던 마트의 관리자는 새벽 1시반, 2시 40분에 작업장에 들렀을 때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시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작업장에 갔을 때는 4명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는 겁니다.

환풍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고 합니다. 기사들에겐 특별한 외상도 없었습니다. 이날 작업이 유독 까다롭거나 생소한 작업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4명의 기사들은 손도 못 써보고 질식한 걸까요.

터보 냉동기는 쉽게 말해 에어컨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역시 온도를 낮추기 위해 냉매 가스를 이용하는데, 이 때 사용하는 냉매가스는 HCFC-123로 프레온 가스의 한 종류였습니다.

이 가스는 무색무취에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산소와 반응을 잘 해서 공기 중에 이 가스의 농도가 높아지면 산소가 부족해 집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공기중 가스 농도가 3.2%가 되면 4시간 안에 쥐의 절반 정도가 산소 부족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점검 기사들은 기계에서 나는 이상 소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기계를 분리하려고 했답니다. 기계 안에 있는 냉매가스를 당연히 빼내야겠죠.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가스를 모두 다 빼내지 못한 채 기계 분리 작업을 하게 됐고, 작업장에는 서서히 냉매 가스가 누출되기 시작한 겁니다.

지하 작업장인지라 환풍기가 위쪽에 있었지만, 냉매 가스는 가라 앉기 때문에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래쪽에서 작업을 하던 기사들은 공기 중 냉매 가스의 농도가 높아지자 산소가 부족해 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질식한 겁니다. 

냉매를 제조한 회사조차 이 가스가 유출될 경우 반드시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고 주의 사항을 명시했지만 현장에서는 어떤 안전 장비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하다보니 이들의 작업이 결코 '통상적인 작업'이 아니라는걸 알게 됐습니다. 작업 요령 뿐만 아니라 전문 지식과 안전 수칙, 안전 장비 사용 방법 등 모든 걸 제대로 숙지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기사들에게 작업 시간은 촉박하고, 환경은 열악합니다.

이번에 숨진 4명 가운데 1명은 22살,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이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작업 환경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좀 더 신중했었더라면, 안전 장비라도 있었더라면, 환기가 제대로 됐었더라면 부지불식간에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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