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누군가 내 아기를 만진다면…

[취재파일] 누군가 내 아기를 만진다면…

최근 지하철에서 한 젊은 여성이 할머니를 폭행한 영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할머니가 자기 아기를 귀엽다고 쓰다듬은 게 이유였습니다.

처음 제보영상을 접했을 때, 할머니에 대한 폭언과 폭행의 수준이 비상식적으로 지나쳤기 때문에 기사화 자체를 망설였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본 부모들의 반응은 예상 외였습니다. 영상 속 아기 엄마의 대응은 분명 도를 넘은 것이지만, 아기 엄마가 느꼈을 기분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나이 드신 분이라도 허락 없이 내 아기를 만지면 정말 화가 치솟는다고 답하는 젊은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위생도 걱정되고, 특히 딸의 경우는 다른 걱정도 된다는 겁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어르신들이 귀엽다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살짝 꼬집는 건 예사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고추 좀 만져보자"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적지 않았습니다. 요즘 부모들 같으면 고소한다고 나설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은, 단지 '미친 사람의 비정상적 언행'이 아니라 시대변화의 한 단면으로 읽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소 거친 제보영상을 어렵게 기사화한 이유입니다.

이 같은 시대변화의 측면을 고려해 균형 있게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들의 반응은 훨씬 단호했습니다.  "허락없이 아기를 만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있을 수 있다"는 기사내용에 대해, 한 어머니는 메일을 보내 "어떻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느냐"며 반문하셨습니다. 외국 같으면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며 기사를 더욱 단호히 쓰지 못한 기자를 질타하셨습니다. 다른 부모님은 "좀더 아기 엄마의 입장에서 기사를 마무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물론 문제의 아기엄마가 조금만 더 이성적인 대응을 했더라면 아마 보다 논쟁적인 기사를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이번 사건 이면에는 개인주의, 저출산, 불신, 노인 소외 등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존재합니다. 가끔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건들이 세상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