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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남조? 근암조?…군함조!

강릉에 나타난 열대 해양성 조류

[취재파일] 구남조? 근암조?…군함조!
평소 친분이 있던 조류사진 전문가로부터 정말 귀하디귀한 새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조차 생소한 새, '군함조'. 몇 번의 반문과 대답 끝에 간신히 이름을 확인한 뒤 반신반의 경포호를 찾았다. 그렇지만 결코 허튼 정보를 알려주는 분이 아니기에 낯선 새 “군함조”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다. 조류와 같은 야생동물 취재가 늘 그렇듯 지루한 기다림과의 싸움이기에 그 긴 시간동안 목 축일 정도의 물과 음료수도 준비하고서 말이다.

태풍 “메아리”가 몰고 온 강력한 호우가 지나간 경포호수는 옅은 물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비에 젖은 초록의 잎사귀들이 잔잔한 호수 물결과 어울려 더욱 싱그럽게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카메라를 세팅하고 이내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1~2시간 쯤 흘렀을까? 호수 건너편에서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새의 모습으로 변해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백로나 왜가리조차 작게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새. 호수 위를 몇 바퀴 돌더니 정말 쏜살같은 속도로 수면을 스치면서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챈다.

군함조. 이름조차 생소한 새다. 열대지방에서 살고 있는 해양성 조류라고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름을 몰라도 전혀 무지한 게 아닌 새다. 학명은 'Fregata Ariel'. 영어 명칭으로는 'Frigate bird'라고 한다. 'Frigate'이 순양함이나 구축함 같은 군함을 뜻하기에 'Frigate bird'를 우리말로 옮기면 말 그대로 '군함조'다.

언제부터 이 명칭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Fregata'라는 군함조속(genus)에는 군함조를 포함해서 다섯 종(species)의 새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비슷한 행동 특성을 보이는데 해양성 조류로 바다 위를 장거리 비행하며 먹이를 찾는다. 또 다른 새의 먹이를 빼앗아 먹거나, 다른 새의 새끼 새들을 잡아먹기도 해서 ‘해적새’ (Pirate bird)란 별명도 갖고 있다고 한다. 크기도 큰데다 빠르기도 군함만큼 빠르고, 장거리 비행도 하면서 다른 새들의 먹이를 빼앗는 습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Frigate bird'란 이름이 딱 제격인 것도 같다.



시속 400km가 넘는 속도로 비행이 가능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측정에 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서 논란의 여지는 많은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매가 자유 낙하할 때 속도를 스피드 건으로 측정해본 결과 300km/h 이상의 속도가 나왔기 때문에 매를 가장 빠른 새로 꼽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텃새도 아니고, 계절 따라 이동하는 여름, 겨울철새도 아닌,  열대와 아열대 일부지역에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무관한 새가 강릉의 경포호수에 나타난 것이다. 왜? 무슨 이유 때문에...?

군함조의 한국 출현은 과거에도 이미 몇 차례 있었던 듯싶다. 1961년에는 청평댐에서,  1967년에는 경기도에서 채집된 적이 있다. 1961년에는 미군에 의해서, 1967년에는 국내 대학교수에 의해서 채집됐는데 아쉽게도 이 당시 대한민국은 먹고 사는 문제가 당면 과제였던 시기라 이 새에 대한 연구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 같다. 1961년 채집됐던 표본은 어디로 갔는지 기록조차 없고, 1967년 표본은 국내가 아닌 미국의 버클리대학에 갔다고 한다. 이후 군함조의 한반도 출현은 몇 년에 한 번씩 학회와 언론을 통해서 확인된다.

가장 최근의 군함조 출현은 2004년 제주와 2007년 춘천에서다. 2004년 8월 하순 제주에서 군함조 한 마리가 발견됐는데 이때는 제 15호 태풍 '메기'가 한반도를 훑고 지나간 이후다. 또 2007년 9월 하순 춘천에서도 군함조 한 마리가 관찰되는데 이때는 태풍 '나리'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난 뒤 며칠 뒤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강릉에서도 역시 태풍 '메아리'가 서해상으로 빗겨간 뒤 바로 군함조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열대 조류인 군함조가 태풍 때문에 한반도까지 날아온 것으로 추정한다. 큰 날개를 가지고 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새인데, 태풍 기류를 잘못타면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태풍 때문에 낮에는 태양의 각도를 파악할 수 없고 밤에는 별자리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개체 보다는 어린 새끼들이 주로 비행능력이 떨어지는데 지난 2004년 제주에서 발견된 개체와 이번 강릉에서 관찰된 개체 역시 미성숙한 어린 새들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일각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한반도, 특히 제주지역에는 과거에 보기 어렵던 열대와 아열대성 조류들이 심심치 않게 관찰되기도 하는데 이런 군함조의 출현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최소한 그네들의 서식지역이 조금씩 위도를 따라 북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풍에 의해 한반도로 날아왔다고 해도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는 않다. 온난화가 태풍의 빈도와 위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낯선 새의 출현은 앞으로도 잦을 것이다. 국내에서 연구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 게다가 지구온난화란 전 지구적 생태,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단순히 흥밋거리로만 봐 넘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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