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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로운 골프 영웅의 출현…US오픈 취재 후기

대회 경제효과만 1천5백억 원 추산

[취재파일] 새로운 골프 영웅의 출현…US오픈 취재 후기

미국프로골프 투어의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이 끝났습니다. 텔레비젼을 통해서는 많이 봤지만, 직접 미디어로 등록해서 현장을 취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대회 시작 전의 설렘과 흥분, 대회 첫 날의 열기, 그리고 마지막 날의 긴장과 환호 등을 두루 현장에 겪어봤습니다. 아직도 한국에서 골프는 귀족적이고 사치스러우며, 음성적인 로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있지만, 땅 넓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는 대중적이면서 친근한 운동이라는 점도 새삼 확인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US오픈은 새로운 골프 영웅을 탄생시킨 대회로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로리 매킬로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22살 젊은이가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무릎 꿇렸습니다.

마지막 날 매킬로이와 같은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한 양용은 선수의 드라이버 샷 거리가 보통 매킬로이보다 30~50야드(40미터)정도는  짧더군요. 거기에다 페어웨이와 러프를 가리지 않는 정확한 아이언 샷, 두려움 없는 퍼팅 등  이번 US오픈 기간의 매킬로이는 더 이상 마스터스 마지막날 어이없게 무너졌던 경험 없는 젊은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대개 인상을 보면 그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 읽혀진다고 하는데, 귀여운 이미지의 매킬로이는 인상과는 별개로 공격적이면서 정확한, 그리고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정한 플레이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습니다. 우승한 날이 마침 미국의 아버지날이었는데, 아버지와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참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미디어증을 입수한 저는 마지막날 연습장에서부터 9번홀까지 양용은-매킬로이 선수조를 쫓아다녔습니다.

 

         


매킬로이가 연습장에 들어설 때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로리'를 연호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 10대 소년은 매킬로이의 셔츠 소매를 만져봤다며 비명을 지르더군요.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는 인기였습니다.

   

7타나 앞선 상황이었지만 매킬로이도 양용은 선수가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연습하다가 슬쩍 양용은 선수의 샷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망의 1번 홀에서 매킬로이와 양용은 선수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 부부의 모습입니다. 부부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세계 어디서나 확인해 볼 수 있는 우리네 애국심과 사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저 부부가 서있는 곳에서는 티샷하는 장면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부부의 얼굴은 간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저도 역시 한 곳에 담아두고 챔피언조를 따라 다녔습니다. 양용은 선수가 초반 몇 차례의 버디 찬스를 살리지 못해 격차를 좁히지 못했고, 매킬로이는 벙커에 들어가든, 깊은 러프에 들어가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해 나갔습니다.

9번 홀쯤 와서는 더 이상 양용은 선수의 역전은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 때부터는 새로운 골프 영웅 매킬로이의 출현을 저 역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찰나, 한 경기요원이 제 미디어증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당신 미디어증에는 페어웨이 출입권은 표시돼 있지 않으니까 선 밖으로 나가달라"고 말하더군요. 미처 확인 못했던 건데, 그 사람 말이 맞았습니다. 제 미디어증은 미디어 센터와 라커룸, 인터뷰룸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US오픈의 마지막 날 경기 아홉 홀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니까 제 딴에는 보통 남는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한 방송사 기자는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이렇게 모든 코스를 돌면서 끊임없이 중계방송을 했습니다. 일본 선수들이 챔피언조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워싱턴에서 취재를 다닐 때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사안이면 한국 특파원들보다 더 많은 일본 취재진들이 모여드는 경우도 여러 차례 봤는데, 일본 언론의 치열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10번 홀부터는 일반 갤러리들과 같은 곳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해서 10번 홀 티박스와 18번 홀 그린이 동시에 보이는 곳의 나무 옆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웬 미국인이 자리를 옮기라고 저한테 말했습니다. 제 발밑에 새끼 새가 있다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하마터면 제가 밟을 뻔 했더군요. 그래도 이 어린 새는 무심한 듯 눈을 감고 졸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죠.
 

 


그렇게 18번 홀 경기가 끝나고 매킬로이의 우승이 확정됐습니다. 먼 길 돌아서 다시 클럽하우스를 지나면서 한 장 찍었습니다. 콩그레셔널 골프장의 클럽 하우스가 미국 골프장 클럽 하우스들 가운데 가장 크다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땅이 좁아서인지, 골프장은 대부분 회원제고, 그래서 그린피는 비싸기 그지없고, 어떤 면에서는 골프장 보다는 클럽하우스를 웅장하게 짓는데 혈안인 한국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 비해서는 뭐 그리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죠.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도 선전했습니다. 양용은 선수가 3위를 차지했고, 노승열, 김경태, 김도훈 선수가 공동 30위, 강선훈 공동 39위, 배상문 공동 42위를 기록했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11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이 정도 성적이면 괜찮다는 평가들을 하더군요.

유독 코스 길이가 길고 러프도 억세서 한국 선수들이 유난히 약세를 보인 대회가 바로 US 오픈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 5의 메이저대회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최경주 선수가 컷오프 된 거죠.

최 선수는 4년 전 이 코스에서 열렸던 다른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어서 아쉬움은 더 컸습니다. 하긴 미디어 등록 첫 날 기자회견을 마친 최 선수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4년 전보다 모든 홀이 30야드씩 길어져서 티샷하기가 보통 버거운 게 아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각자 자기의 생체 리듬이 있고 잘 맞는 코스가 있기 때문에 다른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US오픈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 중의 또 하나는 골프를 통한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이번 대회 기간 대략 28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습니다. 실제로 몇 명을 인터뷰해봤더니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인데, 대부분 US오픈은 하루나 이틀 지켜보고 나머지 사나흘은 워싱턴DC 주변에 갈 만한 곳들을 구경 다니겠다고 하더군요.

또 대회장 근처의 싱글 하우스(정원이 있는 큰 집) 주인들은 일주일 동안 주차장으로 변신해서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습니다. 한 집의 경우 노부부가 정원을 오픈해서 임시주차장을 열었는데, 한 대당 4-50달러에 하루에 125대까지 주차시킨다고 하더군요. 어림잡아 일주일에 3천만 원을 현찰로 버는 셈이더군요.

이렇게 US오픈을 찾아온 관람객들이 자고 먹고 쓰는 돈으로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가 1억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천 6백억 원 정도 될 것이라고 US오픈을 주최한 미국골프협회 임원은 얘기했습니다. 이런 효과를 알기 때문에 기업들이 광고를 하고 스폰서를 자처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여서 말이죠.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 골프란 단순히 운동경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기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US오픈을 직접 가서 구경하고 싶은 대회로 만든 열정과 노력이 간단치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전통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얘기죠.

미국의 역사가 200년을 갓 넘었다며 무시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이들은 그 열등감(?)때문인지 짧은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전통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운동경기뿐 아니라, 대통령 기념관, 오래된 집, 남북전쟁 기념지 등등 미국 전역이 기념관이자 박물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매킬로이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순간, 2011년 111회 US오픈에서 우승한 것이 그 시발점이 됐다는 기록을 찾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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