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도청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도청을 당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 23일 오전 국회에 있는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KBS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한 민주당 원내 지도부의 입장이 논의될 예정이었습니다.
문제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줄여서 '문방위') 회의 석상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발언 내용을 언급하면서 불거졌습니다. 한 의원은 민주당이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여야간 표결 처리 합의를 뒤집었다며 비난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이 한 발언을 인용한 건데, 이것이 비공개 회의의 발언을, 그것도 "토씨까지 틀리지 않고"(민주당 측 주장) 알아낸 것은 누군가 도청을 했기 때문이라는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 일으킨 겁니다.
민주당의 도청 주장을 단순한 정치 공세로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의뢰를 했고, 경찰은 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으며, 누가 어떻게 도청을 했을 것이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얘기들이 국회 주변에 나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아침 일부 신문에서는 도청을 이해 당사자인 KBS가 했을 것이라는 정치권 관계자의 발언을 기사로 전하면서 조속한 의혹 해소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KBS 관련설이 맞는지, 당초 민주당 주장대로 한나라당이 한 것인지, 혹은 제3의 기관 또는 개인이 한 것인지는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쉽게 예단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만약 이번 일이 실제로 도청으로 드러난다면, 관련된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일부에서는 정치권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니 누군가 자백을 하게 되면 결국은 유야무야 끝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하더군요.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냥 보통 일이 아니라 바로 '도청'이기 때문입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제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처벌 규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매우 무겁습니다. 제16조에서는 앞의 규정을 위반하여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는 물론이고(제16조 제1항 1호) 이런 방법으로 지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누설한 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하는 이른바 친고죄도 아니고,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도 아닙니다. 또 명시된 법적 요건에 의하지 않은 도청의 경우에는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예외 사유도 없습니다.
민주당 회의가 도청된 것이라면 일단 도청을 실행하는데 관여한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이를 누설한 사람도 처벌 대상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한선교 의원이 대상일 텐데, 한 의원은 두 가지 항변이 가능합니다. 먼저 도청된 내용인 줄을 전혀 몰랐을 경우입니다. 비공개 회의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도청이 아니고는 구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만...
다음으로는 국회의 공식 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이므로 이른바 면책 특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면책특권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국회에서'라는 문구는 '국회 회의장 안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회 복도에서, 또는 기자실에서 한 발언은 해당이 안 됩니다. 또 회의장에서 한 발언이라도 직무와 관련성이 없거나 명백히 불법행위인 경우(이를테면 허위 사실임을 알고 이를 공개하는 것)는 면책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대신에 회의장 밖에서의 발언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이라도 발언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면 해당이 됩니다. 이를테면 발언에 앞서 기자실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면책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한선교 의원의 발언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와 관련된 것이냐, 또 도청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느냐는 게 쟁점이 되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민주당 관계자가 제3자에게 건네줬고 그 신뢰할만한 제3자로부터 발언 내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뢰할만하다'는 건 전해진 내용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내용임을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일 겁니다. 도청 여부는 모른다는 것이죠.
(한선교 의원이 도청 결과물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누설하는 것이 죄가 되는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그냥 법을 몰랐다는 것에 불과하므로 아무런 방어책이 되지 못합니다. 그건 간단합니다. 법의 무지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률 격언이 있습니다.)
삼성 X파일 사건 기억나시죠? 삼성그룹 최고위 관계자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선거 개입 방안과 검찰 관리 방안을 논의했는데 그것을 구 안기부가 도청했고, 그 녹취록을 MBC와 월간조선이 보도한 것이었죠. 이 사건에서 관심을 끈 것은 과연 도청에 의한 내용이라도 이를 공익적 목적에 따라 보도한 언론인을 처벌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심 법원은 사생활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선거와 검찰 관련 부분 등 핵심 내용만을 보도한 MBC 기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자세한 내용을 그대로 실은 월간조선 기자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고등법원에서는 뒤집혔습니다. 이른바 도청의 결과물을 누설하는 행위 (이 경우는 보도한 것)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도청 자체를 보도하기 위해서, 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정도의 예외적인 상황이 있을 때로 제한된다고 본 겁니다.
결국은 대법원에서도 고등법원과 비슷한 판단을 내리면서 두 언론사 기자가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고도로 공익적인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도한 행위가 도청 결과물의 누설을 절대적으로 금지한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본 겁니다. 도청이라는 행위의 범죄성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 도청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도청의 결과물의 유통을 철저하게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물며 도청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아예 이런 예외가 거론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표결 끝에 내려진 판결인데, 당시에는 시민단체, 민변 등에서 비판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사안이 고도로 공익적인데 이를 핵심 내용만 제한적으로 보도한 것까지 유죄로 본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해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비판에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 판결에 대한 비판 여부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죠. 보도가 문제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도청 자체가 핵심 이슈가 되는 사건이죠.
KBS의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처리 방침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논의한 것은 어떤 경우로 보더라도 도청을 해야 하거나, 또는 도청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공개해야 할 정도의 긴박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테러나 국가 전복을 논의했다면 모르지만 법안 처리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도청하거나 도청 결과를 공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굳이 X파일 사건과 비교한다면, 그리고 이번 사안이 도청 사건으로 확정된다면, 도청을 한 자들은 옛 안기부 미림팀이고 한선교 의원은 그 내용을 보도한 두 언론사 관계자와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되겠군요. 어떤 이유에서든 KBS 수신료라고 하는 것이, 도청 의혹 사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으니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도 잘 지켜봐야겠지요.
[취재파일] 민주당 회의 도청했다면, 처벌은?
삼성 X파일 판결에 비춰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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