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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파란 눈의 게이샤 & 몽골인 요코즈나

- 일본의 폐쇄성과 배타성

[취재파일] 파란 눈의 게이샤 & 몽골인 요코즈나
짙은 화장에 화려한 기모노를 차려 입은 게이샤(藝者)는 종종 일본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약 4백 년 전 처음 등장한 게이샤는 요정이나 연회석에서 술을 따르며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 서예 등 예능을 가다듬어 손님들에게 선보이며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여성들을 일컫습니다.

메이지시대에 이르러 지방 구석구석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던 게이샤는 지금은 그 수가 대폭 줄어들면서 도쿄의 전통적인 요정 밀집지역인 아사쿠사(浅草) 같은 곳에서조차 50여 명만이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을 뿐입니다.

4백 년 전통의 게이샤는 대단히 은밀하고 폐쇄적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지난 2007년 첫 외국인 게이샤 탄생은 그 자체가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파란 눈의 외국인 1호 게이샤는 올해 47살의 호주 여성 피오나 그레이엄이었습니다.

맬버른 태생의 그레이엄은 15살 때 교환학생으로 일본을 찾았다가 첫눈에 게이샤 문화에 빠져들었고,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게이샤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식 게이샤 양성과정에 등록해 10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견딘 끝에 지난 2007년 게이샤  자격증을 따내고 '사유키'라는 예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출발은 순조로웠습니다. 특히 '요코부에'(橫笛)라고 부르는 일본식 플루트에 매우 능했던 사유키는 아사쿠사의 한 요정에 고용돼 정식 게이샤로 연회에 참석했고 화려한 기예를 뽐내며 '파란 눈의 게이샤'로 도쿄 화류계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사유키는 새로운 스타일의 요정 문화를 하나, 하나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업계 최초로 홈페이지를 (www.sayuki.net) 개설했고 손님이 10명 이상 모인 자리를 조건으로 집안잔치 등 각종 행사에 출장도 나갔습니다. 남성 고객과의 술자리뿐 아니라 점심시간에 여성 고객을 상대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이른바 '사모님 회식자리’도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게이샤협회에서 이방인의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곱게 봐 줄 리가 없었습니다.

아사쿠사 게이샤협회는 사유키에게 손님들 앞에서 공연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사유키는 동료 게이샤들과 자주 다투고 개인적으로 공연을 하는 등 불화를 겪어왔습니다. 급기야 얼마 전 게이샤 협회는 사유키에게 게이샤 자격 박탈을 통보했습니다.

협회는 사유키, 아니 그레이엄이 선배 게이샤의 말에 따라야 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게이샤의 의무인 음악과 무용 수업을 자주 빠졌고, 개인 공연에만 공을 들여왔다고 자격 박탈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레이엄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고국인 호주의 언론을 통해 게이샤 협회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자신을 차별하고 배척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도 게이샤로 활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측 간에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파란 눈의 게이샤는 결국 4년 만에 퇴출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레이엄이 적응에 실패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이른바 텃새 습성은 일본의 국기(國技)로 불리는 스모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초 스모계를 뒤흔든 대형 사건이 일어났는데, 일본 스모의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橫綱)로 군림했던 아사쇼류(朝靑龍)의 강제 퇴출 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300년 역사의 전통 스포츠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아온 스모계에서는 2003년 이후 요코즈나에 오른 일본인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권이나 멀리 러시아나 불가리아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최고는 2003년 요코즈나에 오른 몽골 선수 아사쇼류였습니다.

몽골씨름 선수 집안에서 태어난 아사쇼류는 17살에 일본으로 건너와 연습생을 거쳐 1999년 정식 데뷔한 뒤 스모판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신장 184㎝, 몸무게 154㎏으로 스모판에서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편이었지만 몽골 씨름에서 따온 역동적이고 호쾌한 기술로 거구들을 연달아 제압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스모왕 아사쇼류는 현역시절 내내 일본 언론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일본인 요코즈나가 완전히 사라진 스모판에서 '후진국' 몽골 선수가 활개를 치는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언론들은 그가 승리할 때마다 두 주먹을 치켜 올리며 포효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에 대해 패배자를 배려하지 않는 오만한 행동이라며 비난하곤 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승부조작과 여자관계, 후배 폭행, 꾀병 소동 등 아사쇼류와 관련된 추문이 이어졌고 직설적 성격의 아사쇼류는 언론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흥분했고 그것이 또 다른 비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일본 언론의 폭로 가운데 사실도 있지만 과장, 왜곡된 것들도 적지 않았음은 물론 입니다.

결국 지난해 2월 스모대회 기간중에 음주폭행 사고를 일으키고 이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는 비난에 몰리면서 스모판을 떠났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자발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퇴출과 다름 없었습니다. 사실상 강제 퇴출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일본 스포츠계와 학계, 심지어는 극우 성향의 정치권에서조차 외국인 선수 스모 입문 금지와 기존 선수들에 대한 일본인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사쇼류 퇴출의 발단이 된 음주폭행사건에 대해 뒤늦게나마 진실이 알려졌는데, 무고하게 폭행을 당했다던 식당 주인은 언론 보도와 달리 일반 시민이 아니라 야쿠자 출신이었으며 먼저 아사쇼류에게 시비를 걸었고, 아사쇼류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몽골인 요코즈나의 몰락도 결국 내 사람이 아닌 외부 사람에 대한 일본의 뿌리깊은 배타성과 '이지메'(집단 괴롭힘)문화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사쇼류의 몰락을 보면서 재일동포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 한국이름 김신락)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현해탄을 건너 스모계의 3번째 등급인 세키와케까지 승승장구했던 역도산은 패전의 앙금과 조선인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일본 스모협회의 전방위 견제 속에 번번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승급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받은 끝에 조기 은퇴하고 말았고 그 설움을 프로레슬러로 속시원히 풀어보나 싶었지만 일본 청년의 칼에 맞아 숨지면서 이마저도 미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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