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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람을 사로잡는 오바마의 화술

[취재파일] 사람을 사로잡는 오바마의 화술

지난달 1일 일요일(미국 워싱턴DC 시간) 밤 11시 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은 물론 열혈 블로거들까지 내용은 대개 짐작은 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온 미국을 들끓게 했습니다.

바로 미 해군 특수부대가 9.11테러의 배후이자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죽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3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짧은 연설을 통해서 오바마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결론까지 가는 과정에서 오바마는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을 마침내 죽였다.

- 10년 전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를 기억한다. 부모의 자리가 비어있는 저녁 식사자리도.

- 9.11테러는 알 카에다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았고 우리는 바로 알 카에다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 나 역시 취임하자마자 CIA국장에게 빈 라덴을 암살하거나 체포하라고 지시했고 마침내 오늘 그 과업을 달성했다.

-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게 아니다. 빈 라덴은 이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테러집단의 우두머리다.

- 이 건 미국이 선택한 전쟁이 아니다

- 전쟁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지 잘 알지만, 앞으로도 미국은 위협당하는 일을 참지 않을 것이다.

-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우리의 군인들에게 감사한다.

- 이 모든 일들이 자유와 정의의 나라, 분열되지 않고 신 아래서 하나 된 나라,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

중요한 연설일 경우 자신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 사살 발표문도 직접 작성했다고 합니다.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단어를 선택해 세계와 이슬람권을 설득하는 동시에 미국인들에게는 한없는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웅변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미국의 힘에 방점을 찍으려는 이 문장이 다가왔습니다. 미국은 마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다른 나라에게는 까불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Today’s achievement is a testament to the greatness of our country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American people. The cause of securing our country is not complete. But tonight, we are once again reminded that America can do whatever we set our mind to."

이런 경사(?) 전후로 사실 미국에는 힘든 일이 더 많았습니다. 미국 역사에 남을만한 토네이도가 잇달아 미국 중남부를 강타했습니다. 5백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시시피강은 홍수로 범람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토네이도 발생 경보가 울리면 그저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서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미국인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미국 대통령의 역할인 만큼 오바마 대통령은 빠지지 않고 재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지난달 29일 미주리주 조플린을 찾아간 오바마 대통령의 즉흥 연설은 이재민들을 조용히 다독이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평생 보지 못한 재해였습니다.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비극이 여러분만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 미국이 함께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조플린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다시 설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텍사스, 일리노이등 아주 먼 곳에서 사시는 분들도 여러분을 돕기 위해 여기 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미국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인상적인 발언은 희생자 추도식장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방송 기자라서 그런지, 재해현장이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하러 갈 때마다, 혹은 정치인의 일정을 취재할 때마다, TV카메라가 정작 현장에 있는 분들의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때가 많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그 부분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습니다.

사실 조플린 재해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잠깐 했던 말인데요, 추도식장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습니다.

"누구나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조플린에 사는 분들 모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약속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마다 여러분의 나라는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정부는) 어디도 가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곁에 있을 겁니다.

TV카메라는 아마도 사라질 겁니다. 여러분이 겪은 재해에 대한 온 미국의 관심도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조플린이 다시 설 때까지 여러분의 나라는 그 어는 곳에도 가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겁니다. 이 말은 제가 하는 약속이 아니라 미국이 하는 약속입니다."

The cameras may leave. The spotlight may shift. But we will be with you every step of the way until Joplin is restored and this community is back on its feet. We’re not going anywhere. That is not just my promise; that’s America’s promise.

사실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크게 새로울 일이 없습니다. 말로 먹고 사는 직업중 하나가 정치인이니까요. 하지만 그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을 지지하게 만드는 재주는 분명 모든 정치인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 두 현장만 소개해 드렸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솜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연설을 도와주는 많은 도우미들이 있습니다. 다 그 분야에서는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분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 스스로가 갖춰야 하는 덕목입니다.

말을 잘 하면서 듣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말 잘하면 웬지 신뢰가 안 간다는 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인데, 이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는 멋진 정치인의 출현을 보고 싶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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