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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남편·아들 '가슴'에 묻었어요"

고 박명렬 소령의 부인 이준신씨의 그리움 "제겐 1년 365일이 현충일이죠..살아만 있었으면"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던 옛 어른들 말씀이 맞나 봐요. 남편 그렇게 잃고 아들까지...제겐 1년 365일이 현충일입니다."

임무수행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부자(父子) 조종사 고(故) 박명렬(공사 26기) 소령의 아내이자 박인철(공사52기) 대위의 어머니 인 이준신(56)씨.

현충일을 앞둔 주말 기자에게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씨는 아들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한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명렬ㆍ인철 부자는 1943년 국립서울현충원이 조성된 이후 부자가 나란히 안장된 유일한 경우다.

박 소령이 1984년 F-4E를 몰고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데 이어 박 대위 역시 2007년 서해상에서 KF-16 전투기를 몰고 야간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했다.

박 소령 순직 당시 인철 씨는 5살, 여동생은 3살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갑작스런 변고 앞에서 이씨의 황망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다.

공군 측에서 마련해준 직장이 있었으나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용 기술을 배워 전문강사로 활동해왔다.

이씨는 "남편을 잃었을 때는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닥치니까 살기는 살아지더라고요. 그렇게 키운 아들이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햇수로 5년째인데 아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여전히 힘들어요. 주변에서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느냐'고 그래요"라고 전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은 갑자기 공군사관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다. 이씨의 만류에도 아들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창공의 꿈을 이루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관학교를 거쳐 조종사가 된 박 대위는 본인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면서 매사에 열심히, 누구보다 즐겁게 일했다. 사고 당시 새로 생긴 여자친구와 결혼을 꿈꾸던 때라 안타까움은 더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남편과 아들에 관한 다큐소설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이다.

창공을 지키던 그들은 '기지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이씨는 "남편과 아들의 삶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니 여전히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손자도 생겼다. 생도 시절 인철 씨와 함께 '3총사'로 불렸던 아들 친구들과 여전히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세 명이라고 가르친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서울할머니'. 이씨는 '서울 할머니'로 불린다.

4일에는 순조회(순직한 조종사 부인들의 모임) 회원들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햇볕이 따가웠던 이날 그는 아무 말 없이 미리 챙겨온 수건으로 남편과 아들의 비석을 깨끗이 닦아냈다.

이씨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가끔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오는 건 아니에요. 이 좋은 세상을 너무 짧게 살고 간 게 안타까울 뿐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자랑스럽지 않아도 좋아요.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이씨는 요즘엔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려 한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연도 많이 다니고 양로원에서 봉사도 한다.

그는 "이제는 우는 모습보다는 밝고 씩씩한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멋지게 살다간 젊은 청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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