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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이렇게 한다

말하기/쓰기 시험 도입

[취재파일]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이렇게 한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평가 틀과 예시 문항이 6번째 모의평가를 통해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란 학교 영어교육을 실용 영어, 의사 소통 중심으로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현 정부가 이에 걸맞는 평가 시스템으로 개발 중인 새로운 형식의 영어 시험입니다.

교과부는 내년 말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2016학년도 입시부터 수능 시험의 영어 과목을 폐지하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할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인데요, 이에 앞서 2013학년도(2012년) 수시 모집에서 평가 결과 활용을 희망하는 일부 대학과 학과를 대상으로 시범 활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교육당국이 밝힌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성격은 이렇습니다. 성인용으로 만들어진 1급과 고등학생들이 입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2, 3급 가운데, 고등학생용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14학년도부터 수능 영어 과목은 난이도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어려운 쪽이 2급, 쉬운 쪽이 3급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난이도는 일단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 조금 더 쉬운 수준으로 출제하고, 평가는 A, B, C, Fail의 4단계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게 교육당국의 계획입니다.

영역은 모두 4개로 구분되며, 기존의 읽기와 듣기 외에 말하기와 쓰기가 새롭게 도입됩니다. 응시 기회는 시행 초기에는 일단 고 3 때 두 번 주고, 학생들은 이 가운데 더 좋은 점수를 선택해 입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 출제 방식 또한 달라지는데, 출제 위원들이 특정 시기에 모여 그 해 시험 문항을 만들어내는 현재의 수능과 달리 문제은행 형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평가는 IBT, 즉 인터넷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여러가지 달라지는 점들이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변화는 말하기와 쓰기 평가의 도입 그리고 4단계 절대평가 방식의 적용, 이렇게 두 가지를 꼽아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말하기와 쓰기 영역의 도입과 관련해 애기를 해보겠습니다. '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 긴 시간 영어를 배우는데도 우리는 외국인들 앞에만 서면 긴장하며 말을 잘 떼지 못하는 걸까?', '우리 영어교육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런 문제 의식에서 현재 추진 중인 교육과 평가의 변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교육 당국은 설명합니다.

그래서 말하기와 쓰기를 평가에 도입하고 실용영어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거죠. 혹시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유리한 것 아닐까?', '발음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발음에 대한 평가는 최소화 될 거라고 강조합니다. 즉, 말하기의 경우 발음은 '이해 가능한 수준의 발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며, 원어민 같은 발음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고 교과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언어가 아닌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강조하는 현대 영어 교육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미국인처럼 혹은 영국인처럼 말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인, 프랑스인, 인도인, 중국인, 브라질인 등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과 원할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영어가 의미있다는 점에서 '이해 가능한 수준의 발음'을 평가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쓰기의 경우도 '여행했던 장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에 대해 장소와 시기, 선택 이유 등의 조건이 포함되게 글을 쓰도록 하는 것처럼, 특정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약간의 의견을 추가해 글을 쓰는 정도의, 난해하지 않은 문제들로 구성될 거라고 합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자유 작문 수준의 어려운 문항은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게 교과부의 설명입니다.

절대 평가의 도입 배경은 또 이렇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이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학습의 성취 목표를 정해 놓은 뒤 자기 스스로와 경쟁해 목표한 수준을 달성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학생들을 점수 1,  2점 차이로 줄 세우는 대신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각 영역별로 4단계의 등급으로만 성적을 내겠다는 겁니다. 같은 등급 안에서의 점수 차이는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크게 의미를 둘 만하지 않다는 교육당국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늘 새로운 정책이나 시험이 도입될 때 그런 것처럼, 이번에도 현장에선 불안과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우선 말하기, 쓰기 평가의 도입과 관련해 현재 공교육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관련 토론회에서 만난 한 선생님은 본인이 가르치는 학생이 200명쯤 되는데 이 학생들의 작문 글을 자주 섬세하게 첨삭지도하는 건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걱정하더군요.

또 선생님들의 경우도 말하기, 쓰기 교육의 경우 추가적인 공부와 준비가 필요한데 이런 걸 단기 연수를 제공했다고 해서 문제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거죠. 학교현장의 준비상황이 이렇고, 게다가 학교별로 환경과 여건의 차이가 분명한데도 이런 점을 간과하고 새로운 시험을 강행할 경우 사교육이 늘고 교육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새로운 시험 도입에 신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른 우려는 4단계 절대평가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에 대한 과잉학습을 지양하고 일정 역량만 갖추면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라지만, 이 시험이 수능을 대체할 경우 변별력 하락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 경우 대학들이 본고사나 영어 면접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시험이나 평가 틀을 편법적으로 만들어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학생 선발에 필요한 변별력을 원하는 대학들의 수요와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런 점들은 무시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교육당국은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적용을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준비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 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명분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험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교육당국은 두 눈과 두 귀를 활짝 열고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갈지 지켜봐야 할 겁니다. 교육당국의 움직임에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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