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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피' 패션쇼 결국 개최…오락가락 서울시

[취재파일] '모피' 패션쇼 결국 개최…오락가락 서울시
취재파일 속보를 써보기는 또 처음이네요. 서울시가 모피쇼를 예정대로 다시 한다고 합니다. 흐렸다, 갰다 하는 날씨를  '아가씨 마음처럼 변덕스럽다'고들 하죠. 서울시는 아가씨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걸까요.

서울시의 변인즉슨 이렇습니다. '모피 제품을 빼면 패션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펜디측이 알려왔다. 이미 천 명이 넘는 외신기자들에게 보도자료가 나갔고, 항공권과 호텔 대금도 지불됐다. 지금 취소하기에는 손해가 막심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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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개그프로에 나오는 유행어 말마따나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히는 말입니다. 과연 서울시는 업체가 입게 될 피해를 몰랐을까요?

서울시가 '세빛 둥둥섬' 첫 공식 행사로 명품 패션쇼를 선정했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가 동물보호단체가 '모피' 제품이 포함됐다고 강하게 반대하기 시작하니까 여론이 악화될까 화들짝 놀라 취소한다고 말할 때부터 이미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모피 제품이 포함돼 있는 줄 몰랐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모피 제품을 빼지 않으면 세빛 둥둥섬 임대를 안 해줄 것이라고 큰 소리 쳐 놓고서는, 일주일 뒤에 슬쩍 한 발 빼서 '펜디 쪽이 어려움을 호소해서 허락해줬다'고 하면 시민들이 '그래, 그런가보다'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난번 원안대로라면 전체 40여 점의 제품 가운데 모피가 절반이었다. 모피를 뺄 수는 없지만 선글라스나 가방 등 선보일 제품 숫자를 늘려 모피 비중을 줄이겠다고 펜디 측이 밝혀왔기 때문에 괜찮을 것으로 본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모피'가 포함됐기 때문에 패션쇼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패션쇼에서 보여줄 제품을 확 늘려서 모피가 조금 적어보이게 하면 된다는 건가요?

서울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펜디사 측에서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젊은 인재에 대해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뿐 아니라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디자인 경영대회를 열고, 선발된 학생에게는 전 세계 펜디 네트워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어쩔 수 없이 패션쇼를 열게 됐다. 그래도 펜디 쪽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폭 지원한다고 하니 눈 감고 넘어가주는 건 어떻겠느냐'는 의미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요.

지난번 취재파일에서도 분명히 밝혔었지만 '모피' 제품이 패션쇼에 나오느냐 아니냐는 이번 논란의 본질이 아닙니다.

시민을 위해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만든 한강 수상시설 '세빛 둥둥섬'에서 대다수가 누리기엔 무리가 있는 명품 패션쇼를 열기로 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거죠.

명품 패션쇼가 우연히도 '모피'로 갖은 포화를 맞게 되자 서둘러 '취소'운운하며 막아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쓴 채 모기만한 목소리로 '다시 엽니다' 하게 되는 과정이 누가 보기에도 이해하기 어렵고 우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서울시는 세빛 둥둥섬의 운영을 맡은 곳이 민간 업체여서 이미 예정된 쇼를 취소자하자고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지만, 이 또한 자신들이 한 말을 뒤집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난달 제가, 세빛 둥둥섬이 개장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없는지 취재할 때 분명히 이번 사업을 주관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서울시 산하에 있는 SH공사가 지분을 30% 이상 가지고 있어서 공공성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었기 때문입니다.

명품 '패션쇼'도 공공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서울시가 주장한다면 제가 할 말은 없겠지만 어떤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인지 서울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시민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인공섬 사업이었던 '세빛 둥둥'도 시작부터 삐걱대는데, 한강에 오페라 하우스 짓고, 서해 뱃길 열어서 크루즈 다니도록 하는 등 앞으로 산적한 다른 사업들은 어떻게 될까요?

역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일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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