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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앵커 자리 날려 버린 다이어트

- '기름기'와 '날씬함'의 이데올로기

[취재파일] 앵커 자리 날려 버린 다이어트

여성들의 옷차림이 날로 가벼워지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 여름이 오긴 왔나 봅니다. 한 여름 거리에서, 또 해수욕장에서 멋진 'S라인'을 뽐내보려는 많은 여성분들이 헬스클럽이나 요가학원에서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외모지상주의에 편승한 S라인 열풍은 사실 남녀 노소, 국내외를 막론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여성들에겐 필사적인 투쟁 목표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고른 영양 섭취와 함께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매를 가꾼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단 시간에 효과를 보고자하는 분들에게 다이어트는 쉽게 물리칠 수 없는 유혹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인위적이고 무리한 다이어트 욕구가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엔 이른바 '살 빼는 약'까지 손대는 일탈 행위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 끝은 불행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소개할 불행의 주인공은 타이완에 있는 한 방송국의 잘나가는 여성 앵커입니다. 올해 32살인 뤄제닝은 우수 아나운서에게 주는 상까지 여러 차례 받았던 인기 앵커로 174센티미터의 큰 키에 55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의 다이어트가 필요 없을 정도였지만 뤄제닝의 욕심엔 끝이 없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많은 돈을 주고 영국에서 유행한다는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살이 빠지기는 커녕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붙는 겁니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겠거니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몸무게는 88킬로그램까지 불어났고 결국 뤄제닝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앵커 자리까지 내놓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약을 소개한 친구는 이 약이 살 빼는 약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찌는 약이었다며 때늦은 변명과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뤄제닝은 어느새 대인기피증 환자가 돼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거울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여성들이 이처럼 한 줌 뱃살에 몸서리쳐야하는 딱한 처지가 된 걸까요? 잠시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기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존의 필수 요소인 음식에 대한 인류의 갈망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신석기 시대, 소위 '농업 혁명'과 함께 일정 부분 잉여 농산물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 마저도 무기를 독점한 극소수의 지배계층의 몫이었을 뿐 대부분의 민중들은 허기를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세기까지도 지구상의 대부분의 문명과 국가에서도 이 민중의 배고픔 해결하지 못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첨단 생명 과학과 기업형 경작 체제, 운송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불과 최근 2, 30년 내에 비로서 웬만한 중산층이면 크게 먹을 것 걱정 안 하는 행복한 세상을 맞게 된 겁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결식 아동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북녘 땅의 헐벗은 주민들처럼 제 때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게 바로 현실입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 대부분이 배고픔에 관한 투쟁사와 동일시 되어온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도 정해졌었습니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 풍만해진 여성의 몸매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으며 부의 가늠자이기도 했습니다. '食'의 시대, 이른바 '기름기'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인류 최초의 원시 조각으로 알려진 빌레도르프 비너스상이나 미로의 비너스상부터 19세기 인상파 르느와르의 여인 소묘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미에 관한 시각은 줄곧 비슷했습니다.
 

 

         
         


동양이라고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 당나라의 양귀비나 우리나라의 미인도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살집 좋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여성의 풍만한 몸매는 물론, 생물학적인 이유에서 다산과 풍요의 요건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세기의 미녀로 꼽히는 마릴린 먼로나 우리나라의 엄앵란, 최은희, 김지미 씨도 결코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하늘하늘한 몸매의 소유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뚱뚱한 것이, 혹은 뱃살이 '가난함'이나 '게으름' 더 나아가 '패배자'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 배경에는 더 이상 먹을 것 걱정 안 해도 되는 대량 소비시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食'의 문제가 해결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재빠르게 '衣'로 옮겨 가게 됐습니다. 衣, 다시말해 패션이며 볼거리에 대한 집착이죠. 미디어의 발달, 특히나 TV 등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카메라 잘 받고 옷발 잘 살려주는 날씬한 몸매가 각광을 받게 된 겁니다.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은 앞다퉈 8등신의 깡마른 몸매를 갖기 위한 경쟁에 나섰으며 이런 새로운  시대상, 즉 '衣'의 시대에 맞춘 '날씬함'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확립됐습니다.

도처에 다이어트 상품과 살빼기 특효법이 판을 치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굶기 위한 투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뤄제닝 같은 불행한 피해자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diet)란 말은 이제 너무 보편화돼 식상할 지경이지만 새삼스럽게 그 어원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다이어트(diet)라는 말은 라틴어 "diaeta"와 그리스어 "diaita"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way of life" 내지는 "regime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 "적절한 음식 섭취를 통해서 조화로운 신체의 발달을 도모하는 생활 방식"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음식의 섭취를 통한 건강이 목적이었지 음식의 절제나 거부를 뜻하는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본 뜻을 저버리고 무리한 살빼기에만 매달리다가는  'diet'가 자칫 'die'를 부를 수 있음을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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