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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제역 검사 하느라 브루셀라 검사 안 해

[취재파일] 구제역 검사 하느라 브루셀라 검사 안 해

며칠 전에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른 수의사 선배 한 명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한 근육통에 기침이 나고, 열이 많이 나는 감기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넘게 정확한 병명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감기라고 생각을 해서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에 가고 나서야 '브루셀라'라는 세균에 감염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 브루셀라로 불리는 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브루셀라가 처음 사람에게 알려진 건 18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브루셀라를 막연히 지중해 부근 나라에서 발생하는 열성질병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중해를 뜻하는 'editerranean' 열을 뜻하는 'fever'를 합쳐 'Mediterranean fever'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많이 감염된 사람들은 몰타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이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병사들의 전투력이 많이 떨어져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1887년 영국군 군의관 데이비드 브루스(D.Bruce)이 처음으로 원인균을 밝혀냈습니다. 왜 하필 '브루셀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아시겠죠?

그 뒤 많은 의학자들과 수의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이 세균이 염소에서 짠 우유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 뒤에는 염소뿐만 아니라 소, 돼지에서도 균을 분리해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여기까지는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이제부터 의학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이 세균이 사람이 감염될까?'였습니다.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1920년, 미국의 세균학자 앨리스 에반스(A.Evance)가 결국 사람도 이 세균에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브루셀라라는 세균은 종류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동물에 따라 6개로 나눠져 있고, 그 6개의 세균이 사람에게 위험한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냈습니다.

그럼 이 세균이 왜 중요할까요?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가축들과 함께 사람도 걸리는 이른바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브루셀라에 감염되면 유산을 하고, 고환염을 앓기 때문에 생산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도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인데요, 실제로 축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가 많이 걸립니다.

만약 이 병에 감염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중요한 문제인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심한 독감 증세를 나타냅니다. 열이 많이 나고, 근육통이 매우 심합니다. 또 두통, 오한, 기침, 심한 경우는 폐렴까지도 이어집니다. 다행히 치사율은 2% 정도로 낮은 편입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짜 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치료가 잘 안 되고, 증상이 좋아져도 언제든지 증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브루셀라균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한 번 감염되면 세포 안에서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항생제를 써도 잘 죽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설사 완치가 됐다고 해도 세포 안에 있으면서 눈치를 보다 사람이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나와 증상을 보입니다.  이를 의학적으로는 '잠복감염(Latent infection)'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세포 안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면역 상태가 안 좋으면 다시 나타나 숙주를 괴롭히는 거죠. 더 쉽게 얘기하면 한 번 감염되면 이 세균과 함께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수의사 중에도 브루셀라에 감염돼, 아직도 고생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조금 무리만 하면 컨디션이 급속도록 나빠져 매우 힘들어하는 걸 자주 봤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지금부터가 본론인데요, 이와 같은 이유로 정부는 2006년부터 매년 백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브루셀라를 근절하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른바 '브루셀라 청정 사업'. 실제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수의사들 업무의 70%가 이 브루셀라와 관련된 업무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암소 한우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브루셀라 검사를 하고, 만약 양상이 발생하면 감염된 소와 같은 농장에 있었던 소는 모두 살처분 합니다. 그리고 소를 도축하거나 사고팔 때 반드시 브루셀라 검사를 받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책으로 매년 소 150만 두 이상이 브루셀라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실제로 소에서 5% 이상이던 브루셀라 발병률이 최근에는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지난 1월에 구제역이 창궐하면서 생겼습니다. 구제역에 모든 인력을 동원하다 보니 브루셀라를 검사할 수의사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정부는 1월 중순 10여 일 동안 브루셀라 검사를 받지 않은 소도 도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설을 얼마 안 남겨 두고 있을 때여서 고기는 많이 필요했는데, 검사할 인력은 없고, 그래서 정부 스스로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책을 스스로 어겼습니다.

실제로 그 때는 평소보다 20% 정도 많은 소가 도축됐습니다. 또 제가 농민들을 상대로 조사해 본 결과 당시는 구제역 파동으로 도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축산농민들도 소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소를 많이 도축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평소보다 많은 소가 도축됐고, 고기가 돼 우리 식탁에 올라왔습니다. 결국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고기가 우리 밥상에 올라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브루셀라균도 다른 세균과 마찬가지로 60도 이상에서 3분 이상 익히면 죽어버려 큰 위험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소고기를 육회로 생식을 하고, 간과 비장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브루셀라균은 주로 혈액을 타고 이동하는데 장기 중에서 혈액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간과 비장 등의 장기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이 장기를 날것으로 먹을 경우 감염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또 당연히 근육에도 혈액이 가기 때문에 고기를 날로 먹을 경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국민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꼭 검사를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정부도 나름의 입장이 있었습니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면서 방역에 집중을 하느라 인력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일이 없었다고 해도(물론, 확인되지 않는 환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든지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 계속 발생할 겁니다. 그 때마다 인력이 없다고 다른 질병검사를 안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식의 정책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어렵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충원을 하고, 시설이나 장비 등을 보완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요? 어쩌면 큰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런 기본적인, 당장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적 보완 작업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일본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도축하는 모든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들어가지만, 일본 정부는 이 정책을 계속 펴나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일본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선진국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검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브루셀라 검사를 생략해버린 정부의 이런 모습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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