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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체놀이'와 '짱구는 못말려'

- 사람잡은 만화

[취재파일] '시체놀이'와 '짱구는 못말려'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곰이 공격해오자 두려운 나머지 나무 아래서 꼼짝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더니 죽은 사람인 줄 알고 곰이 그냥 지나갔다는 얘기...이 동화를 떠올리게 되는 엽기적인 장난을 이른바 '시체놀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특이한 장소에 시체처럼 죽은 듯 누워 있는 놀이를 말하는데 벌써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와 영국 등 여러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널빤지를 뜻하는 플랜킹 (Planking)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 보이는 이 시체놀이의 기원을 따져봤더니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일본 만화 '짱구는 못 말려!'가 바로 그 시작이었습니다.

    

 


1992년 일본 아사이TV 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인 '짱구는~'(원제는 '크레용 신짱')의 주인공인 5살짜리 괴짜 장난꾸러기 소년 노하라 신노스케가 즐겨하는 취미 생활이 바로 '시체놀이'('시타이곳코, 死 ごっこ)였습니다.

만화를 보면, 방바닥에 누워 꼼짝 안 하고 누워 있는 신짱을 보고 친구들이 뭐하고 있냐고 물으면 '시체놀이' 중이라고 대답하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짱구는~'이 인기를 끌면서 유치원생부터 초중고생들, 회사원들까지도 '시체놀이'를 따라하게 된 겁니다. 혼자 방 안에서 하기도 하지만 학교나 사무실 등에 모여서 단체로 엽기적인 포즈로 '시체놀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게 유행을 타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플래시 몹'의 형태를 띄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마침 디카와 싸이 붐까지 타면서 어느새 '시체놀이'는 젊은이들의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과거 한 방송 개그프로그램에서 이른바 '혼자 놀기의 진수'로 소개되기도 했고 지난해말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의 출연 배우들이 '시체놀이'하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시체놀이'가 점점 더 엽기적으로 변해간다는데 있습니다.

      
       


남들이 미처 생각 못한, 혹은 엄두를 못낸  엽기적인 장소에서 '시체놀이'를 한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려야만 무리 사이에서 대접을 받게 되다보니 경쟁적으로 점점 더 위험한 장소를 택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만 것입니다.

나뭇가지나 운동 기구에 걸려 죽어 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고, 계단이나 복도, 심지어는 화장실도 촬영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위험스런 장소에서 벌어지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들이 빈발하고 있지만 마니아들은 그렇다고 멈추기는 커녕 더 자극적인 도전을 준비할 뿐입니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 그제 호주 브리즈번에서는 스무살 청년이 자신의 7층 아파트 난간에서 '시체놀이' 동작을 취하다가 발을 헛디디면서 추락사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시체놀이' 마니아였던 청년은 사고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추락사까지 벌어진 호주에서는 이 시체놀이가 사회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총리까지 나서 젊은이들에게 위험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시체놀이'가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요? 모든 놀이문화에는 그 시대를 풍자하는 문화적인 코드가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마치 시체인양 꼼짝 안 하고 누워있는 '시체놀이'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소통보다는 자기 편한 대로 나만의 세계에서 살고자하는 우리 동시대인들의 극단적 개인주의 인생관을 풍자하는 놀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숨막히는 경쟁에 지친 나머지 팍팍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소리없는 웅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해봅니다.

어찌됐건, 냉소적이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시체놀이'가 하나 뿐인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할 정도로 값어치 있는 놀이는 아닌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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