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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관세 수입와인 가격이 왜 세계 2위?

[취재파일] 무관세 수입와인 가격이 왜 세계 2위?
한-EU FTA가 오는 7월 1일부터 발효되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와인들의 국내 판매 가격이 많이 싸질 것이란 기대가 높습니다. 현재 와인에 부과되는 관세가 15%인데 한 EU FTA는 와인의 경우 즉시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에 그만큼 싸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해 우리가 축산업 같이 피해보는 업종이 초래되는 것을 감수하고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수입 와인 가격이 정말 그만큼 싸질까요? 지금의 와인 수입, 유통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너무 단정하지 않기위해 100%란 말은 안 썼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와인 수입 - 유통 형태가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칠레산 몬테스 알파는 A업체만, 1865는 B업체만, 카르멘은 C업체만 수입할 수 있고, 프랑스산 와인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 역시 한 업체만 수입하고 있습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업체가 수입하는 와인은 공략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주요 와인들이 다 이런 식의 구조여서 다른 업체들은 수입 자체를 할 수 없고 당연히 경쟁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FTA로 수입 와인 관세가 0%가 돼 전부 와인수입업체 마진으로 돌아가더라도 와인 수입업체는 관세 인하분 모두를 낮출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같은 와인을 수입하는 경쟁업체가 있어야 그 업체 눈치를 보느라 가격을 낮추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수입업체 이야기도 "솔직히 관세 인하분을 모두 가격 인하에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2004년 FTA를 체결한 칠레산 와인을 가지고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칠레는 우리나라의 첫 FTA였던만큼 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춰 지난 2009년부터 무관세로 와인이 수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2007년 또는 2008년산 몬테스 알파 까베르네 쇼비뇽의 가격을 조사했더니 우리 나라에서 팔리는 가격이 38달러 27센트로 세계 2위였습니다. 환율 영향을 반영한 뒤 모든 제품을 미국 달러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입니다.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는 나라의 와인 판매 가격이 FTA를 체결하지 않아서 관세가 있는 나라들보다 훨씬 비싼 것입니다.지난 2007년 칠레와 FTA를 체결한 일본은 24달러 4센트로 우리보다 14달러 이상 쌌고, 미국와 영국은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가격의 절반을 조금 넘는 17~18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심지어 칠레와 FTA를 체결하지도 않은 독일은 9달러 65센트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수입 와인 가격이 비싼 이유가 독점적 수입업체의 마진 탓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금이 비싼 편인 것도 이유입니다. 주세 30%에 교육세, 부가세 등이 부과되고 있고, 우리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수입와인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가 아니라 수입단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여서 수입 단가가 비싼 와인 일수록 판매 가격이 높아지게 됩니다.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유통업체의 판매 수수료입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와인 매장은 크게 보면 직영 매장과 임대 매장으로 나뉘는데 임대 매장의 경우 와인 공급업체들이 유통업체에 수수료를 줘야 합니다. 보통 20~30% 수준의 수수료를 요구하는데 이렇게 되면 와인 공급 업체들은 그 수수료를 가격에 반영하고 임대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임금까지 가격에 반영하게 됩니다. 그만큼 소비자가 사는 가격은 올라가는 구조가 됩니다. 2~30% 수준의 수수료는 사치품과 같은 조건인데 미국이나 일본의 유통업체들은 와인을 식품으로 분류하고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도 15%를 넘지 않습니다. 와인 가격에 거품이 끼게되는 이유인 겁니다.

이런 거품만 뺄 수 있어도 수입와인 가격이 매우 '착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유통업체가 자회사로 와인 수입업체를 차려놓고 일부 와이너리를 개척해 와인을 직수입 해서 직영 매장에서 판매했더니 같은 와인 가격을 '13만~20만원'에서 '8만 9천원'으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수입업체가 마진을 20% 정도 가져가고 유통업체가 10% 정도를 가져 갔는데도 가격이 절반 이상으로 싸지게 된 겁니다. 수입와인의 수입, 유통 단계에 얼마나 많은 마진들이 붙고 있는 지를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FTA를 체결하면서 일부 산업을 희생시키는 이유는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후생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싼 값에 수입품을 들여와 소비자의 선택을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지갑 부담도 덜어주는 긍정적인 효과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경쟁' 입니다. 같은 수입 와인을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수입할 수 있고 수입된 와인들이 지금처럼 독점 유통업체에서만 판매되지 않고 소비자들이 한 곳에서 여러 업체에서 수입한 와인을 선택해서 고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FTA로 인한 소비자 후생 증대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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