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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조잔디는 빛 좋은 개살구?

[취재파일] 인조잔디는 빛 좋은 개살구?

어느 때부터인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학교 운동장이 초록색으로 바뀐 곳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 천연잔디인가 했더니 인조잔디였습니다. 흙먼지 풀풀 나는 운동장 이외의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이 자랐던 제게 들었던 생각은 '요즘 학교 좋아졌네'였습니다.

지난 해 가을, 제 아이가 가입해 있는 주말 축구클럽에서 시합에 나간다고 해 인조잔디를 직접 밟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초록색 인조잔디는 눈으로 보기에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직접 들어가 보니 일단 너무 더웠습니다. 가을바람 살살 부는 쾌적한 기온이었는데도 공을 차는 학생들은 얼굴이 벌겋게 돼서 땀을 뻘뻘 흘렸고 저를 비롯한 학부모들도 연신 부채질을 해대야 했습니다.

인조잔디의 표면은 맑은 날에는 대기온도의 2.5배까지 올라갑니다. 30도 날씨라면 70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과 교실이 가까운 학교에서는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뜨거운 바람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유의 화학물질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완충 작용을 위해 쓰이는 시커먼 고무 알갱이가 신발 속에 들어가고 공도 곧바로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이번 방송의 아이템은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저기 인조잔디가 많이 깔리고 있는데 과연 괜찮은 걸까? 그래서 취재에 들어가 보니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더군요.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생활체육시설 뿐 아니라 각급 학교 운동장에도 인조잔디를 시공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정부, 즉 참여정부에서 운동장 현대화 계획이라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인조잔디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공부에 짓눌려 운동량 부족한 아이들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좋은 취지였습니다.

그동안 사실 학교 운동장은 관리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예산도 없고 관리 인력도 없어 흙 운동장들은 비오면 진흙탕으로 변하고 마르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았습니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천억여 원을 들여 260여 개 학교에 인조잔디를 깔기 시작했는데 조성 초기부터 유해성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인조잔디의 구성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인조잔디 운동장은 석유화학제품인 초록색의 겉잔디와 속잔디, 그리고 쿠션감을 주기 위한 고무분말인 충진재(또는 충전재)로 구성됩니다.

환경단체 등에서 문제제기를 하자 2007년 교육부가 176개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의 고무분말을 수거해 성분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24%의 학교에서 납과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물론 발암물질이자 환경호르몬인 다핵방향족 탄화수소 등이 다량으로 검출되었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간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인조잔디의 KS규격은 물론 안전기준 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고 문제가 된 학교의 고무분말을 전면 교체해 줬습니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문제는 바로 다음 해인 2008년에 또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잔디 파일이 문제였습니다. 경기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가 한국화학시험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준치의 49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었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인 잔디 파일에 보기 좋은 초록색을 내주게 하는 녹색 안료에 납이 다량으로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납은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대표적인 원인 물질입니다. 정부는 유아들이 물고 빨고 하는 완구류 기준에 맞춘 품질기준을 만들어 고시했습니다. 폐타이어를 사용하던 고무알갱이도 유해물질이 적은 재료를 압출성형방식으로 해 가루도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유해성 문제는 거의 해결됐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준치 이하라 하더라도 이런 유해물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민감한 어린이들의 경우 저농도에서도 중독되거나 유해 성분이 체내에 축적되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2008년에 사업 명칭을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사업'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인조잔디 뿐 아니라, 천연잔디, 마사토, 감람석, 우레탄 다목적 구장 가운데 학교 특성과 여건에 맞는 것을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까지 학교운동장 조성사업이 추진된 1600여개 학교의 75%가 인조잔디를 선택하는 등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우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천연잔디는 친환경적이어서 아이들 정서에 좋고 또 도심에서라면 열섬 현상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반면 잔디 생육 기간 동안 사용이 제한되고 초기 시공비는 가장 저렴하지만 유지 관리에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취재도중 잔디학회 교수님을 만났는데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예산 집행의 문제인데 처음 시공비로만 평균 5억 원을 지급하는 경직성 때문에 천연잔디는 아예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조잔디는 초기 5억 원으로 시공하고 나면 이후 관리비는 거의 소요되지 않고, 천연잔디는 초기 2-3억 원이 들고 이후 2억 원을 적립해 매년 관리비로 사용하면 되는데 이런 형태의 예산집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인조잔디는 수명이 7-8년으로 길고 유지 관리비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지관리라고 하면 소실되는 고무분말을 보충해주고 밟혀서 부스러지고 납작해진 잔디파일을 세워주며 바닥에 떨어진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있는데 취재를 다녀본 학교 가운데 주기적으로 이렇게 관리를 하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인 잔디 파일은 가만히 놔둬도 햇볕에 의한 광분해가 일어나는데다 마찰에 잘게 부서지기 쉽습니다. 4~5년만 지나면 초록색은 거의 사라지고 시커먼 고무분말이 표면에 노출되어 최대 장점인 시각적 효과마저 반감되는 곳이 많았습니다.

오염 문제도 제기됩니다. 운동하면서 배출하는 침, 땀, 혈액 등은 천연잔디나 흙운동장에서는 미생물들의 작용으로 자연 분해됩니다. 인조잔디에는 이런 미생물들이 없기 때문에 세척과 소독을 해줘야하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전문 세척제 역시 독한 성분이어서 피부와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문제점이 있는데도 왜 인조잔디를 선호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 추진도 문제지만 교육청과 학교의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를 중시하기보다는 교장 선생님들이 임기 내 업적으로 보기 좋은 인조잔디를 까는데 치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송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요인은 동네마다 있는 조기축구회라고 생각합니다. 인조잔디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은 축구입니다. 볼 차는데 열심인 이런 분들이 맘 놓고 찰 운동장이 부족하고 흙운동장은 비가 오면 마를 때까지 사용할 수 없고, 넘어지면 많이 다치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또 학교 측은 이들로부터 사용료를 받습니다. 비용은 큰 액수는 아니지만 매년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돈이 학교 운영비 수입으로 들어와 열악한 학교 재정 운영에 약간의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은 또 나름대로 동네에서 영향력 있는 유지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발언권도 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흙 운동장은 그대로 두고 보조운동장을 조그만 생태숲으로 조성한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 학교는 2년 전쯤 지자체로부터 인조잔디 운동장을 권유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 도시에 사는 학생들이 흙을 밟을 기회가 없는데 학교에서라도 흙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정서함양이나 건강에도 안 좋다는 이유에서랍니다.

학교 운동장이 단순히 공만 차는 공간이 아니라 정서함양과 인성교육에도 중요한 공간이라는 평범한 교육철학이 너무 쉽게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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