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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힐러리는 왜 입을 가렸을까?

- '비무장' 빈 라덴 사살 논란

[취재파일] 힐러리는 왜 입을 가렸을까?
이번 주, 최고의 국제 뉴스는 미군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소식이었습니다. 911테러의 배후로 꼽히며 10년 동안 美 당국의 추적을 받아 왔던 빈 라덴이 미군 네이비실 대원들의 기습을 받고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다는 소식에, 미국인들과 서방의 동맹국들은 일제히 환호를 보냈습니다.

반면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즉각 보복 공격을 공언했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빈 라덴의 죽음을 '순교'로 여기며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당초 빈 라덴이 AK 소총을 난사했고 아내를 인간방패 삼아 목숨을 부지하려고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말을 바꾸고 말았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빈 라덴의 12살짜리 어린 딸이 진술한 내용이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빈 라덴이 당시 비무장 상태였으며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했음이 뒤늦게 드러나자 당황한 백악관은 빈 라덴이 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격렬하게 저항을 했고 무기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살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나 국제법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투원이 아닌 빈 라덴을 생포한 뒤 총살한 것은 임의 처형인 만큼 부당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빈 라덴 사살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백악관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 온 미군과 그 주적인 빈 라덴은 일종의 교전 상태였던 만큼 전쟁법상 '교전 중 사살'에 부여되는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맞섰습니다.

이 와중에 시카고 트리뷴지 출신의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찍은 사진 한 장이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게 됩니다. 미군 특수부대의 빈 라덴 제거 작전이 진행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 국가안보회의(NSC) 멤버들이 백악관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사진 속 오바마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자기 자리를 기꺼이 작전을 지휘하던 군인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구석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설명을 듣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거론하며 지위고하를 떠난 격의 없는 의사 소통과 실용적인 업무 방식이 초강대국 '미국의 힘' 이라는 해석들이 쏟아졌습니다(아마도 이게 백악관이 사진을  공개하게 된 당초 목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비무장인 빈 라덴을 무참히 사살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관심은 공교롭게도 같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로 옮겨졌습니다.

힐러리는 사진이 찍히던 순간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습니다. 손을 가린 힐러리를 두고, 비무장 상태의 빈 라덴을 사살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고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이런 행동이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다시 말해, 백악관의 해명과 달리 국무장관조차도 자국 특수부대원들의 잔혹함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급기야 리비아 사태 협의차 로마를 방문 중인 힐러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힐러리는 사진이 찍히던 그 순간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면서 아마도 알러지 때문에 재채기가 나올까봐 입을 가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빈 라덴 사살 순간에 나온 자신의 반응은 아니었다는 얘기인데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당초 백악관은 NSC 멤버들이 모든 작전 수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밝혔었지만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물론 오바마 대통령도 빈 라덴이 총에 맞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20~25분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작전이 합법적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작전 상황에 대해서는 보안상 더 이상 말 할 수 없다"며 총총 자리를 떠났습니다.

도대체 사진 속의 사람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은 기침을 참을 수 없듯 오래 감추기 어려운 법입니다. 자꾸 진실을 감추려고 하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을  뿐입니다.

미국은 하루 빨리 빈 라덴의 사살 과정을 숨김 없이 공개하고, 작전 과정에서 불법, 부당한 점이 있었다면 응분의 책임과 사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고 있는 국제사회의 비극적인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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