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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인들, '아사다 마오였더라면'

[취재파일] 일본인들, '아사다 마오였더라면'

올해 세계 피겨 선수권 대회가 너무 아쉽게도 일본 안도 미키 선수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피겨 퀸' 김연아 선수는 간발의 차로 역전 우승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일본 TV중계로 김연아 선수가 점프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고, 특히 시상대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본 언론은 안도 미키의 우승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우승이 확정된 다음날인 일요일자 일본의 조간을 보면, 6개 신문 중에 아사히와 요미우리 등 4개 신문이 1면에 안도 미키의 사진과 함께 우승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스포츠면 거의 한 면을 할애해 경기 내용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의 반응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뜨겁지 않았습니다. 비중 있게 다루기는 했지만, '국민적 열광'이나 '국민적 쾌거'로 다룬다는 느낌보다는 단지 조금 의미가 큰 스포츠 뉴스로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방송의 경우도 중계를 한 후지TV를 제외한 나머지 민영 방송들은 담담하게 보도했습니다. 흔히 쓰는 상투어인 "열도가 흥분에 휩싸였다"라는 표현을 쓰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왜 그럴까? 일본의 국민성이 원래 차분해서 그런가? 저도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지난해 동계 올림픽 때 보여준 일본의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볼 때 다소 의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사다 마오 선수가 은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들은 온갖 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 선수의 눈물을 줄기차게 보여주며 전 국민적인 성원과 격려를 보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만큼 호들갑스럽게 아사다 마오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며 '비운의 영웅'식으로 부각시켰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이번에는 '어, 우승했나 보네' 정도의 반응이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시기적으로 대지진 피해 지역에 대한 희망을 주는 소식이라는 점에서 더 크게 부각시킬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애쓰는 모습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안도 미키 선수가 "일본을 위해 달렸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시상 직후 '힘내라 일본!'이라는 글귀가 적힌 일장기를 들고 링크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영 감동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그제 지진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방을 근거지로 한 프로야구 구단 라쿠텐 이글스의 첫 센다이 홈 경기-당시 박찬호 선수가 3실점 패한 경기보다도 일본 언론의 반응과 의미 부여가 시원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는 일본 친구들하고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대체로 가장 큰 이유로 "안도 미키 선수의 스타성이 아사다 마오 선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말하더군요.
분명히 이번 안도 미키 선수의 우승이 풍부한 화제 거리를 낳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피겨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에 4년만의 역전 우승이라는 점, 그동안 아사다 마오 선수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화려하게 비상했다는 점,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했다는 점 등 풀어나갈 수 있는 감동의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재난을 겪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오히려 안도 미키 선수의 '인생 역전' 우승 스토리가 더 희망을 주는 소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그 주인공이 안도 미키 선수가 아닌 아사다 마오 선수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습니다. 아사다 마오가 일본의 '국민 여동생'의 아이콘이라면, 안도 미키 선수는 그냥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 인식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두 선수에게 상당수 일본인들이 투영하는 이미지가 달라 인기의 레벨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보니, 우승의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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