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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카터는 불청객?

[취재파일] 카터는 불청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직 국가 수반들을 대거 이끌고 방북길에 올랐다. 한반도의 정세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했던 카터 전 대통령. 본인은 소방수임을 자처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는 그가 오히려 불을 지피는 것은 아닌가하며 노심초사다. 17년 전의 일 때문이다.

지난 1994년 6월 15일 카터 전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북한을 찾는다. 당시 고어 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불허 의견을 제시했지만, 클린턴은 카터의 방북을 허락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김 전 대통령은 93년 1차 핵 위기 이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잇단 돌출 행보에 대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서 북한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던 때였다.

나흘간 북한에 머물렀던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전 주석을 만났다. 그리고, 북한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국제사회에 공개했다.

"북한은 핵 무기 개발 의사도 없고 개발 능력도 필요없다. 현 시점에서 핵을 동결할 수 있다. 추방 예정인 IAEA 사찰단 2명이 잔류할 수도 있다. 또한, 신형 경수로 건설을 미국이 도와주면 영변 흑연감속 원자로를 해체할 용의도 있다. 또, NPT에 복귀할 의사도 있다."

카터는 이같은 김일성 전 주석의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고, 이튿날 CNN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했다. 대부분 한국과 미국 정부에 알려졌던 내용이었지만, 양국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던 터였다. 이런 와중에 카터 전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북한 입장을 공개하면서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이 난처해졌다.

결국, 카터의 방북은 영변의 5MW 짜리 원자로에 북한이 연료봉을 재장전하지 않는 조건을 단 채 미북대화 재개로 이어졌다.

또한, 카터는 불만이 가득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다 줬다. 바로 전후 최초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선물을 덥썩 받아들였고, 일사천리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그해 7월 25일 역사적인 첫 만남을 예정했다. 하지만,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취소돼버렸다.

카터의 방북이 한미 양국의 대북 강경책의 방향을 튼 것은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제네바 합의로 이어져 핵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공을 세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계획했던 로드맵을 벗어나길 지극히 싫어하는 양국 외교라인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똑같은 일이 17년이 지난 후 또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카터 혼자도 아니다. 전직 수반들을 대거 이끌고 북한에 간다.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청와대는 벌써부터 김정일을 만난 카터가 MB면담을 요청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를 고민이다. 외교부도 카터가 갖고 올 메시지가 무엇일지 촌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터의 방북은 개인 차원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지난 주부터 외교부 관련 당국자들은 점심 약속까지 제쳐두고 북한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카터 측은 이번 방북에 앞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듣고 갔다. 북한의 주장만 듣고 오지 않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정일을 만난 카터가 지난 94년 때처럼 '김정일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우려도 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며칠 후면 방한할 카터의 메시지를 최대한 축소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에게 남북대화의 공을 던져 놓은 입장에서 그 공을 카터가 다시 한국으로 고스란히 되갖고 오게 되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MB정부의 대북 정책은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숱하게 제기돼 왔다. 유연성이 떨어지는만큼 외부 요인의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카터의 방북은 결과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번 주 한반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 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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