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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쿵푸 팬더의 '엄마'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다

[취재파일] 쿵푸 팬더의 '엄마'

3년 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쿵푸 팬더>가 다음 달에 다시 돌아옵니다. 당시 <쿵푸 팬더>는 우리나라에서만 45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는데요,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도 그렇고 <쿵푸 팬더>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려 온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 개봉할 <쿵푸 팬더 2>에 대한 기대도 엄청난데요, 특히 이번에는 요즘 영화계 대세인 3D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감은 배로 부풀어 있습니다.

때마침 영화 담당기자로 남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던지, <쿵푸 팬더 2>를 미리 보고, 제작진과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LA 근교 드림웍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전 세계 프레스 정킷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쿵푸 팬더 2>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정킷에는 전 세계 매체가 구름떼처럼 몰렸습니다. '쿵푸'를 소재로, '중국 칭다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라서인지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중국계 매체들의 관심이 특히 컸습니다.

이번 정킷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쿵푸 팬더 2>의 앞부분 65분짜리를 3D로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쿵푸 팬더>에서는 오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국수 가게에서 일하던 뚱보 팬더 포가 쿵푸를 익히고, '드래곤 워리어'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2>에서는 '드래곤 워리어'의 리더가 된 포가 새로운 악당을 물리치는 여정과 함께 포의 출생의 비밀이 벗겨지게 됩니다. 팬더인 포에게 왜 오리 아버지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드디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영화를 직접 보시면 알 수 있을테고.....

그런데, 이번 정킷 취재에서 쿵푸 팬더 포에게 엄마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엄마, 바로 포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엄마를 만났는데요, <쿵푸 팬더>에선는 수석 스토리 기획자로 이번 <쿵푸 팬더 2>에서는 총감독을 맡은 제니퍼 여 감독입니다.

<쿵푸 팬더>라는 이야기를 처음 생각해내고, 그 이야기에 맞는 주인공 '포'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무려 반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엄마가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열 달을 버티듯이, 여 감독은 이야기에 어울리는 포를 6달 동안 배 속에서 키워냈고, 산통 끝에 포에게 생명을 불어 넣은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뭐라해도 포의 엄마인 것은 틀림이 없지요.

여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교포 2세입니다. 사실 드림웍스는 애니계의 '멜팅 팟'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지요. 같은 회사 안에서도 무려 38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인종이 있다고 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 곳 할리우드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이, 그것도 여성이, 한 편의 영화 총괄을 맡아 작업을 한 건 여 감독이 처음입니다.

제가 만나 본 여 감독은 말 그대로 '엄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엄마는 아니지만, 조곤조곤한 말투에 온화한 미소가 딱 '엄마' 같았습니다. <쿵푸 팬더 2>의 줄거리를 직접 소개를 해주는데, 마치 동화 구연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목소리 안에서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더니, 여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감수성이 풍부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감성적입니다. 스토리를 만들면서 항상 생각하는 게 '이 순간에 캐릭터는 어떻게 느낄까'입니다. 그걸 잡아내면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조용한 편입니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죠. 특히 일할 때는 더더욱요."

한 편의 영화에 투입되는 인원은 4백여 명. 더빙 작업도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잭 블랙, 안젤리나 졸리, 게리 올드만 같은 대스타들과 함께 합니다. 그렇게 <쿵푸 팬더 2>가 만들어지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은 체구에다, 조용한 말투의 여 감독이 이 긴 시간 동안,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끌어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스태프들은 내가 여성이다, 동양계다 하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전혀 이슈거리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영화를 존중하는지, 영화를 정말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여 감독을 스토리 작가에서 감독으로 전격 발탁한 드림웍스의 CEO 제프리 카젠버그는 여 감독을 대단히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여 감독은 완벽합니다. 똑똑하고, 뛰어난 이야기꾼에, 마음씨도 비단결 같아요. 그래서 이야기에 풍부한 감수성을 부여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액션에도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요."

특히 여 감독 특유의 세심함과 꼼꼼함, 예리함에는 할리우드 대스타들까지 감탄했습니다. 더빙 때 배우들 앞에 앉아 동작 하나, 목소리 하나까지도 영화 장면과 맞는지 살필 정도였으니까요.

호랑이 '티그리스'역의 안젤리나 졸리는 여 감독에 대해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쿵푸 팬더 2>에서는 '내면의 평화(inner peace)'를 찾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감독님은 이미 그걸 찾은 거 같아요."라면서 "정말 부드러운 면을 갖춘 연출자"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실제로 <쿵푸 팬더 2>에서는 사부가 포에게 '이너 피스'를 강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포' 역의 잭 블랙도 여 감독의 능력을 칭찬했습니다. "감독님이 꼼꼼하게 신경 쓴 디테일들이 작은 보석처럼 서서히 광채를 발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최고의 장점을 끌어냅니다."라고요.

여 감독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 모든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무궁무진 하다는 거죠. 특히 애니메이션만 보지 않고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를 즐겨 본다고 합니다. 단지 기법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이번 <쿵푸 팬더 2> 작업을 하면서는 직접 중국 쓰촨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안개가 산등성이에 자욱하게 끼어있는 장면을 봤는데, 그게 이번 작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 초반부 배경 설명에서 수묵화처럼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또, 영화 한 장면 한 장면 완성을 할 때마다 모든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웃음이 터지는 시간까지 체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쿵푸 팬더 2>의 경우, 10초 마다 한 번씩 웃음이 터지도록 이야기를 짰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드림웍스에서 이례적으로 발탁된 동양계 여성 감독이다 보니, 그만큼 여 감독은 주목을 받고 있었는데요, 이런 관심에 대해 여 감독은 정작 드림웍스 내에서는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뿌듯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였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러 갔는데 여성 감독을 보고 굉장히 용기를 얻더라고요. 동양계 감독이라서 더더욱요. 매우 드문 일이니까요. 이들이 용기를 얻는 이유는 감독이 되는 데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니까요."

'마징가 Z', '태권 V' 같은 흑백 만화를 즐겨 보며 상상력을 키우던 소녀. 이제는 세계 영화계를 좌지우지 하는 3D 애니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됐습니다. 여 감독은 기술면에서 월등히 앞서있지만, 아직 스토리가 부족한 한국 애니메이터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미리 겁먹지 마세요.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면 끝까지 밀어붙이세요. 물론 실력은 쌓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잘 될 겁니다."

여 감독의 보살핌 속에 뚱뚱한 몸매에, 국수집 종업원에 불과했던 '포'는 '드래곤 워리어'를 이끄는 쿵푸 전사가 됐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엄마' 여 감독은 정말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온 힘과 정성을 다했습니다. 여 감독을 보면서 모든 일을 '엄마' 같은 마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하면, 열 자식도 안 부러운 똑 부러진 자식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교훈도 얻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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