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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웃고 춤추는(?) 장례식장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 <써니>

[취재파일] 웃고 춤추는(?) 장례식장
기자들이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서너 달에 걸쳐 '수습' 과정을 거칩니다. 치열하게 취재해야 하고, 온갖 일들을 겪어야 하는 기자가 되어야 하기에 '수습' 생활은 정말 혹독합니다. 잠 한숨 못자고 경찰서를 돌아야 하고, 사건사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당사자와 목격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언론사 신입사원'은 점점 '신입기자'가 되어 갑니다.

저는 이런 수습 생활을 거치면서 정말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유족을 통해 죽음의 이유를 좀 더 가까이 취재하자는 것인데,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에게 이것저것 캐묻는다는 건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습기자들에게 장례식장은 '슬픔과 이별의 장소' 동시에 '어렵고 힘든 장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 영화 속 장례식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공간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그 이별이 한없이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보다 소설로 먼저 나왔던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의 장례식장은 동창회장이나 파티 같은 분위기입니다. 방송작가를 꿈꾸던 친구의 자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를 위해 주인공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을 장례식장으로 부릅니다. 친구의 가는 길 따뜻하게 배웅해 주자는 것이죠.

친구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친구가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해줍니다. 심지어 스타가 된 친구는 국화로 장식한 근조화환 대신 알록달록한 꽃으로 장식한 화환을 보냈습니다. 피어나는 꽃을 표현해야 하는 사진 촬영을 하다 왔다며 파란색 눈 화장에 노란색 드레스까지 입고 나타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20대에 세상을 등진 친구의 가는 길이 어둡고 슬프지만은 않게 해주려는 것이었겠죠. 심지어 그동안 고민을 떠안고 살던 24살의 주인공 네 명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미래를 위한 건배까지 합니다.

일부 평론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시끌벅적하게 건배를 하는 모습이 아무리 영화라 해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썼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지킬 예절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는 듯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그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 떠난 친구도 그리 나쁘게 볼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 달 개봉할 영화 <써니>에서는 장례식장이 댄스 무대로 등장합니다. 25년 만에 만난 여고시절 단짝친구. 다시 만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80년대 디스코바지를 입고, 일명 닭 벼슬 머리를 하고, 유행가에 맞춰 춤도 추면서, 고민과 웃음을 함께 나누던 여고 친구들, 세월 앞에 학창시절 꿈꾸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서로의 앞에 섰습니다.

누구는 잘 산다고 잘난 척 하지 않고, 누구는 못 산다고 숨지도 않습니다. 학창시절 그 때처럼 그저 '친구'로 모였습니다. 40년 남짓한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친구는 남겨진 친구들에게 '내 몫까지 잘 살아 달라', '예전의 꿈을 잊지 말고 살아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마지막 유언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추던 그 춤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도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친구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 앞에서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은 상복을 입은 채 춤을 춥니다. 마치 떠난 친구도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잊고 어떻게든 잘 살아간다고, 죽은 사람만 잊힌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밝고 즐거운 장례식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을 절망하게만 하는 죽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죽음은 그 사람을 추억하는 동시에, 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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