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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규장각 도서와 결혼한 여인

[취재파일] 외규장각 도서와 결혼한 여인

신문기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방송기자의 경우 특히 인터뷰 기사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술가들처럼 작업실이나 전시실, 연주실 등을 화면의 배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좀 낫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난감한 경우가 많죠.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박병선 박사의 인터뷰는 그런 측면에서 고민스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장면 말고는 특별히 배경으로 활용할 만한 것도 없는데다, 지난해 직장암으로 서울과 파리에서 두 차례나 수술을 했던 83세 노학자의 건강상태도 염려스러웠고요.

그런데 일단 만나 뵈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배경화면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건강상태는 생각보다 상당히 양호하신 편이었고, 워낙 말씀을 또박또박 잘 하셔서 인터뷰 기사를 쓰기가 오히려 편했습니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박병선 박사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파리 유학길에 오릅니다. 사범대를 졸업한 뒤 역사 연구를 좀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울을 떠나올 때 역사학자 故 이병도 선생으로부터 중요한 과제(?)를 하나 부여 받게 됩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함대가 외규장각의 고문서를 약탈해갔는데, 그 행방을 알 수 없으니 잘 찾아보라는 것이었죠. 이 부탁이 결실을 맺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에 갇혀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처음 펼쳤던 순간에 대해 박병선 박사는 “처음 표지를 넘기니까, 먹 향이 퍼지는 거예요. 100년이 지났는데도 먹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라면서 평생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라고 답하시더군요.

그렇지만 그 ‘먹 향’은 박병선 박사에게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파장이 우려되자 도서관 측은 박 박사를 해고 했던 거죠. 그렇다고 고국에서 반겨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외교당국은 프랑스와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병선 박사에게 오히려 조용히 있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래도 박병선 박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나중에라도 반환을 요구하려면 보관된 도서를 일일이 열람해서 목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반환을 요구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당연히 협조할 리가 없었겠죠. 하루 전까지만 해도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이 자신을 피하고 도서 열람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매일 도서관에 출근해서 대출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대출이 안 된다는 답을 들으면 말없이 돌아서고, 다시 다음 날 도서관 문을 열면 또 대출을 요구하는 신경전을 한 달 이상 벌이자,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도서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답변을 얻어내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한 권, 한 권 확인한 뒤 297권의 도서 목록을 만들고 그 내용을 정리해 우리가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는데 또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 1991년 서울대 규장각이 처음으로 반환을 주장하고 나섰고, 우리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번에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까지 다시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프랑스도 나름 사정은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현지 문화재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한 번 반환의 물꼬가 트이면 걷잡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경우 지금이나마 돌려받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셈이죠.

물론 ‘반환’이 아니라 ‘대여’라는 점이 문제이기는 합니다. 박병선 박사도 인터뷰 내내 ‘대여’라는 명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2015년~2016년 ‘한-불 상호 문화교류의 해’ 행사 때 프랑스에서 이번에 반환된 외규장각 도서를 전시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가 대여 갱신기간인 5년 뒤가 됩니다. 만약 내년에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을 못할 경우, 프랑스 쪽에서 절차상 ‘대여 도서 반환’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반환에 대해 합의할 당시, 구두 약속이기는 하지만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입니다. 내년에 프랑스의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의 약속을 완전히 뒤집고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일단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을 돌아간 데 대해서는 박병선 박사도 감격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평생을 혼자 살아오셨는데, 실제로는 외규장각 도서와 결혼하셔서 이번에 출산을 하신 것 아니신가요?”라고 했더니, “그런 셈이네요”라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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