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이번에 되찾은 외규장각도서 대부분은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들을 글과 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기록들입니다. 성을 짓는데 참여한 공사인부들의 이름까지 적어놓은 이런 기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한주한 기자입니다.
<기자>
명성황후 장례식을 기록한 의궤 복사본입니다.
신주를 담은 가마와 액막이 구실을 한다는 눈이 넷 달린 가면을 쓴 광대, 좁은 문을 지날 때 관을 나르는 데 쓰는 작은 상여, 곡소리를 전담하는 궁녀와 신식군인으로 구성된 호위대 등 장례행렬이 꼼꼼히 묘사돼 있습니다.
조선 왕실의 장례문화와 당시 풍습, 사회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수원화성 축성 과정을 담은 의궤는 공사 인부 5천 명의 이름과 작업기간까지 기록해 그 꼼꼼함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영우/이화여대 교수 : 이런 기록은 다른 나라에 전혀 없습니다. 조선왕조시대의 기록문화 수준이 높다, 정치의 투명성·책임성 이런 거를 다 보여주는 거죠.]
국내에 남아있는 의궤들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이 될 정도로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반환되는 의궤는 어람, 즉 임금 열람용이 많은데다 유일본도 30권 가량 포함돼 있어 더욱 귀중합니다.
하지만 대여 방식으로 반환된 것에 대해선 논란이 있습니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5년간만 빌려주는 거라고 돼 있어요. 그리고
5년 후에는 '(프랑스로) 돌아와야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돌아와야 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환된 외규장각 도서가 우리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기 힘든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영상취재 : 노인식, 영상편집 : 최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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