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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만하다 5천억 원 날린 일본

[취재파일] 자만하다 5천억 원 날린 일본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치명적인 상처에 깊은 슬픔에 빠진 당신들을 절대 우롱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 아님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지난 1997년부터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 가입 국가를 중심으로 원전 사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원자력 발전소 등 핵시설 사고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발생 국가는 물론이고 주변 국가까지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사고 수습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국제사회에서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원자력손해배상보충협약, 약어로는 CSC로 불린다. 이 협약의 내용은 간단하다. 가입 국가들이 경제력과 원자력 발전 규모를 고려해서 분담금을 내고 IAEA가 관리하고 있다가 원전사고가 발생하는 국가에 최대 3억 SDR, 우리 돈으로 5천억 원 가량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 협약의 발효 조건은 2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5개 국가 이상 가입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조건은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열 출력 총량이 총합 40만 UNIT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

10년을 넘게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한 결과, 지금까지 가입한 나라는 미국과 아르헨티나, 모로코와 루마니아 등 4개 국가다. 발효 조건에 1개 나라가 모자라고, 열 출력 총합 역시 36만 UNIT로 40만 UNIT에 4만 UNIT이 모자란다.

가입한 4개 국가 외에 호주와 인도 등 14개 국가가 최종 가입만 못했을 뿐 조약에는 이미 서명한 상태여서 곧 이 조약은 발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의 지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조약에 서명조차 안 했다. 일본은 자체 원자로 열출력 총량이 14만 UNIT이기 때문에 만약 미국의 요구대로 이 조약에 가입했다면 원자력손해배상보충협약은 국제적인 효력을 얻게 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일본은 5천억 원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도표로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가입 국가

원자로 열 출력 총량

CSC 발효 조건

5개국 이상

40만 UNIT 이상

현재 가입상황

4개국

36만  UNIT

일본 가입할 경우

5개국

50만 UNIT

미리 닥쳐올 재앙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냐마는 원자력손해배상보충협약에 대해서 일본은 할 말이 없다.  

미국 등이 일본에게 이 협약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일본은 자기들은 가입하면 손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원전시설은 안전한데 왜 거액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거다. 당하지도 않을 사고에 대비해 비싼 보험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과신이었다. 일본 정부의 자만으로 결국 5천억 원의 지원금을 날린 셈이다.

수십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5천억 원이 무슨 큰 돈이겠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원전사고에 대비하는 원칙과 자세의 문제다. 원전 사고를 바라보는 일본의 의식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원전 강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일본이 원전 사고에 대한 대응체계는 삼류에 그쳤던 이유가 설마설마하며 안심하고 과신했던 데 있었던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도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역시 160억 원 정도의 분담금이 부담스러워서다. 또, 중국이 합당한 분담금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우리가 가입을 머뭇거리고 있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 일본의 사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설마 우리가, 설마 한국이, 이런 생각으로 방관하다가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날 경우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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