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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멍게도 조사하는 국방부

[취재파일] 멍게도 조사하는 국방부
국방부에서 어제 갑작스러운 브리핑 일정이 올라왔습니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의 어뢰추진체 프로펠러에 붙은 부착 물질과 관련한 브리핑이라는 것이 국방부 공보실의 설명이었습니다. '천안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지난해 이맘 때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 정부 관계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가슴 아팠습니까? 프로펠러 부착물질과 관련한 지난 내용을 되짚어 봤습니다.

프로펠러에 붙어있는 0.8mm 정도의 물질이 붉은 멍게라는 모 언론의 보도가 있었죠. 어뢰추진체가 바다에 잠겨있다면 바다생물이 붙을 수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붉은 멍게는 얘기가 좀 달랐습니다. 붉은 멍게는 동해안에만 서식하는 해산물이라고 합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어뢰추진체가 백령도 근해에서 발견됐다는 국방부의 발표가 조작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붉은 멍게가 자칫하면 천안함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뒤집고 국방부의 조사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여럿 고위 장성들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는 대단한 이슈가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도 순간 들었습니다.

이미 보도가 됐습니다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수사과장 권태석 중령의 얘기를 옮겨보겠습니다.

프로펠러에 붙어있는 흡착물질, ‘멍게’라고 주장하는 그 물질에 대해서 분석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뢰추진체 프로펠러에 붙어있는 흡착물질은 크기가 0.8mm로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전자현미경으로만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아주 작은 물질이었습니다. 이를 분석과 결과 ‘붉은 멍게’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본부에서는 물질에 대해서 전략양식연구소 및 동해수산연구소에 분석한 결과 붉은 멍게의 유생이나 어린 붉은 멍게가 아니라는 분석결과가 나왔고, DNA를 분석한 결과 생물체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무생물체로 확인되었습니다.

생물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DNA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 멍게가 아닌 무생물이다, 이런 취지입니다. 함정이 많은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의혹을 해소하려면 이 물질이 무엇인지 실체를 밝혀야 하는데 말입니다. 물질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루트3이 유리수가 아님을 밝혀라'는 수학문제를 직접증명법이 아닌 귀류법으로 푼 느낌이랄까요?

국립수산과학원측 설명은 이렇습니다.

바다에 사는 모든 DNA가 다 종합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물체와 일치하는 DNA가 없었다. 그래서 생물체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무생물체인데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규명되지 않았다. 적색물질이 사진으로 봐서는 멍게처럼 보였지만 워낙 작아서 현미경 관찰을 해봤다.

현미경 관찰을 해보니까 굉장히 작은 입자상의 물질이 엉켜있는 형상을 띠고 있었다. 적외선분광분석기로 성분 분석을 해보니까 우리가 보통 생물체에서 나타나는 유기물질 형태는 거의 검출되지 않았고, 대부분이 무기물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칼슘이 주 성분인 무기물질로 이루어져있었다.

천안함 어뢰부착물질이라고 해서 현미경 조사를 해보니까 형태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섬유질 성분의 붉은 입자가 덩어리로 되어있는 그런 형태로 보였다. 그래서 이 결과로 봤을 때는 어린 붉은 멍게는 아니다, 그리고 언론에 나온 것은 유생이라고 나왔는데, 유생이 1.5mm정도... 유생은 부착하는 게 아니라 부유생물. 동물성 플랑크톤이기 때문에 붙을 수가 없다. 

자, 일단 멍게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붉은색 물질의 실체를 끝까지 규명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보겠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 설명입니다.

이게 무슨 생물체냐, 생물체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고, 프로펠러에 굉장히 날카로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들이 육안으로는 식별 못하지만 다른 이물질이 다소 붙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사건을 해결하는 어떠한 단서가 방금처럼 붉은 멍게라면 분명히 이것은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무기물인지 무슨 물질인지는 사건 전체의 흐름에 결정적인 단서가 안 되기 때문에 깊이있게 무슨 물질인지 구분은 하지 않았다.

(기자) 어쨌든 이 이후에는 별다른 확인을 더 안 하시겠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멍게냐 아니냐를 놓고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40분 가까운 질의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기자의 결론은 이겁니다. 멍게 또는 생물이 아니다. 동해바다 생물인지 서해바다 생물인지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어뢰추진체가 조작이냐 아니냐를 따져 볼 변수가 되지 않는다.  간단한 결론이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습니다.

어뢰에 의한 직접 타격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폭침됐다는 합조단의 결론도 그 동안 제기됐던 여느 가능성 보다 가장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멍게냐 아니냐를 두고 40분 넘게 진땀을 빼야했던 조사본부 관계자들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군의 조사내용에 대한 불신이, 군이 갖고 있는 천안함과 관련한 트라우미가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브리핑 직후 군 일각에서는 멍게가 아니면 개불이냐, 개구리냐, 말미잘이냐는 웃지못할 농담도 이어졌습니다.  멍게도 조사할만큼 조사 결과에 자신이 없느냐는 자조적인 얘기도 터져 나왔습니다.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사본부의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되려 의혹만 키우는 국방부식 발표, 무언가 개운치 않습니다. 크게 잘못된 건 없는데 명백한 결론을 내고서도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는지... 대화의 기술, 브리핑의 기술이 부족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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