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집은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입니다. 녹물이 섞여서 불그스름한 수돗물이 나올 정도로 낡기는 했지만 한 가지 큰 장점이 있습니다. 상당히 튼튼하게 지어져서 조용하다는 점인데요, 한 20년 째 사는 동안 윗집, 아랫집 소음을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공동주택은 원래 방음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희 집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층간소음 취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근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겉은 번지르르한데 사는 분들은 이웃 소음 때문에 고통 받고, 더 나아가서 다툼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집들에는 제가 사는 낡은 집과는 다른, 무언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우선 몇 가지 기본 지식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에 층간소음 기준이 적용된 것은 지난 2006년 이후 건축 승인이 난 경우부터입니다. 2006년에 건축 승인이 났다면 공사기간 등등을 고려할 때 일러야 재작년 정도 입주 아파트부터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2008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들은 층간소음 기준 없이 그냥 지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러면 그 전까지 지은 아파트들은 어땠을까요. 한동안 층과 층 사이의 바닥, 슬라브 두께를 15센티미터 정도로 지은 곳들이 많았습니다. 현재는 보통 21센티미터 정도니까 상당히 얇은 셈입니다. 아파트는 고층화되는 만큼 벽체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목적에 원가 절감이라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이렇게 되면 위에서 작은 아이가 조금만 뛰어도 바로 아래층, 또 아래층 옆집, 혹은 아래 아래층 집까지, 아파트 전체에 진동과 소음이 울려 퍼지기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층간소음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었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지은 아파트들이 주로 해당되는데, 이런 공동주택에 사시는 분들이 지금 주로 층간소음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층간소음 기준을 도입하고 이 슬라브 두께를 두껍게 만들도록 규정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이때 현실적으로 잘 손질이 됐다면 적어도 지금 새 아파트에 입주하시는 분들은 걱정이 없으셔야겠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가 제가 취재한 문제점입니다. 새로 규정을 만들었는데도 층간소음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정부가 층간소음 기준을 적용하니까 아무래도 건설사들 불만이 많았겠죠. 규제만 늘리면 어떡하느냐, 현장에서 그 기준을 어떻게 맞출지 대책을 세워줘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볼멘소리가 쏟아지니까 정부가 아이디어를 하나 냅니다. 바로 ‘정부 공인 샘플’을 만드는 겁니다. 바로 이름하여 ‘표준바닥’이라는 겁니다. 이 ‘표준바닥’ 도면을 만들어서 그대로만 아파트를 지으면 실제 테스트를 생략하고(!) 법에 정해진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로 한 것이죠.
정부가 정해준 대로만 지으면 의무를 면제해준다니, 건설회사 입장에서야 이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아파트에 정부가 정해준 그 표준바닥을 그대로 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새 아파트 바닥에 가서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면 상당수가 층간소음의 정도가 법적 기준을 넘어갈 정도로 부실합니다. 한 단체가 조사해본 결과는 표준바닥 아파트의 60%가 법적 기준을 넘겼고, 한 회사의 조사에서는 법적기준치의 두 배까지 소리가 크게 들리는 아파트도 있었습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현실이 된거죠.
표준바닥 도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보입니다. 벽체만 좀 두껍게 만들었을 뿐이지, 그 위에는 단 2센티미터짜리 스티로폼 판을 ‘완충재’라는 이름으로 깔게 돼있습니다. 직접 그 판을 봤더니 음식물 택배 올 때 박스로 쓰는 스티로폼보다 부실한 모양새입니다. 직접 봤더니 넣으나 안 넣으나 사실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습니다. 전문가는 그런데 오히려 이 스티로폼이 소음을 더 증폭시킨다고 했습니다. 생활 소음의 주파수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어서 이 스피로폼 판을 통과하면서 더 울림이 커진다는 이야깁니다.
이 회사는 고무와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다양한 물질을 덧대서 차음재를 만들었습니다. 옆 사진에 오른쪽이 표준바닥용 완충재이고 왼쪽이 차음재입니다. 쿵쾅거리는 소리, 긁는 소리, 떨어지는 소리들은 모두 주파수가 다른데 이렇게 다양한 소음을 걸러낼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실험장의 슬라브 두께는 오히려 기존 건물보다 얇은 18센티미터였지만, 소음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위에서 농구공으로 두들겨도 소리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이런 차음재가 현실에서 쓰이기란 상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정부가 ‘표준바닥’이라는 ‘층간소음 면죄부’를 만들어 준 상황인데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나중에 아파트 층간소음이 난다고 주민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정부가 만들어 준 샘플대로 지었다”라고 하면 끝이니까요. 이 회사도 그래서 아직 이 차음재를 실제로 시공하지 못했고, 이미 주인이 있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조합을 다니며 현장에 직접 시공을 해놓고 설명회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다시 공은 정부로 돌아갑니다. 이런 식의 ‘표준바닥’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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