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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IBM이 신약을 개발?

수퍼 박테리아 잡는 나노입자 개발한 IBM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본업인 IBM이, 수퍼 박테리아의 일종인 MRSA균(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을 잡는 새로운 나노입자를 만들어 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주요언론이 보도했습니다.

MRSA균은 병원이나 헬스클럽 등에서 종종 감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로, 미국에서만 1년에 2만 명 가까운 사람이 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목숨을 잃습니다. 국내에서도 병원에서의 2차 감염 문제를 다룰 때 단골로 등장하는 무서운 박테리아입니다. 2006년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5천3백만 명이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다고 합니다. 일반 항생제가 듣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의료계의 골칫덩이입니다.

IBM 연구자들이 싱가포르의 바이오공학-나노기술 연구소(the Institute of Bioengineering and Nanotechnology)와 협력해 개발한 이 나노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에 불과하며, 건강한 세포들은 해치지 않고 수퍼박테리아만 골라서 파괴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IBM에서 이 연구를 주도한 제임스 헨드릭(James Hendrick)에 따르면, 이 나노입자는, 자석의 N-S극과 같은 전기적 극성을 띠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나노입자는 그래서, 수퍼박테리아 표면 세포막의 반대극성을 끌어당기고, 세포막을 헤집은 뒤,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첨부한 사진에서, 왼쪽의 검고 둥근 형상은 파괴되기 전의 MRSA박테리아 세포, 우측의 것들은 나노입자에 의해 파괴된 박테리아 세포입니다. 윗줄은 저배율, 아랫줄은 고배율로 확대된 사진입니다.) 

MRSA균은 기존 항생제에 대해서는 변종을 만들어내지만, 이번에 새로 개발된 나노입자의 공격에는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고, 연구진은 보고 있습니다.

이 입자는 동물실험을 거쳐야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는 데다, IBM이 이 입자를 의료현장과 의약품 시장에 맞는 약으로 개발할 관련기업을 찾아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 입자에 기반한 신약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수 년간의 오랜 시일이 걸릴 전망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대단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BM의 이번 연구 성과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 제약업계의 항생제 연구 투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습니다. 미국 전염병학회(The Infectious Disease Society of America)에 따르면, 미국에서 새로운 항생제에 대한 승인 건수는 지난 1983년 16건이었지만 2008년에는 단 2건으로, 지난 30년간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성 질병 전문가인 마리오 라비글리오네(Mario Raviglione)는, IBM의 새로운 나노입자가 기존 항생제의 박테리아 공격방식을 훨씬 앞서간다면서, '박테리아에 발사되는 미사일과 같다'고 평했습니다.

참고로, 이 입자는 생분해성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 분해된다고 합니다. 연구진의 표현을 빌면 이 입자는 "몸 속에 들어가서 수퍼박테리아를 파괴한 뒤 스스로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는 겁니다.

IBM은 나노기술 연구에 수십 년간 투자해 왔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반도체 기술과 컴퓨터 설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구는 원자수준의 입자와 전자를 가공하는 것도 포함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얻은 성과를, IBM은 오염된 물의 정화라든가, 플라스틱의 재활용 등 새로우면서도 공공성이 있는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도 병행해 왔습니다.  이번 나노입자 개발은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IBM은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얼마나 많길래 이런 연구까지 지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하고 유지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까요? 그리고, 어느 세월에 그 비용을 회수하고 해당 연구에서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있게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겁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연구는 아직 시장에서 곧 팔릴 것을 다루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머니가 IBM처럼 깊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는 현명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IBM처럼 원천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정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늘 서구 기업이 원천기술로,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장을 창조해 놓으면 치고들어가 2등을 하는 "따라쟁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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