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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끼리 사냥꾼의 변명

[취재파일] 코끼리 사냥꾼의 변명

아프리카 초원의 주인공은 사실 사자나 표범이 아닌 코끼리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는 하루에 먹이 200킬로그램과 물 100리터 이상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식성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거대한 코끼리도 사냥꾼들의 총구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죠. 총 한 방에 무참히 쓰러지는 코끼리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 사냥 매니아들이 은밀히 아프리카 초원으로 모여듭니다. 밀엽을 강행하려다보니 그 비용도 엄청나 서구의 돈 많은 기업가들이 주요 코끼리 사냥 고객입니다.

투자의 귀재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워렌 버핏도 유망 기업에 대한 투자를 앞두고 "코끼리를 잡을 총이 장전됐다.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버핏이 실제로 코끼리 사냥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웹 호스팅 업체인 고대디닷컴의 설립자인 밥 파슨도 코끼리 사냥꾼 가운데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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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 어렵사리 휴가를 내서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입성했습니다. 코끼리를 한 방에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라이플을 챙기고 유능한 가이드 한 명과 함께 야간 사냥에 나섰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밥의 총이 불을 뿜었고,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쓰러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 밥은 개선 장군이라도 된 듯 자신의 전리품 (?) 옆에서 자랑스럽게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밥의 세리모니가 끝나자 코끼리의 사체는 굶주인 마을 주민들의 차지가 됐습니다.

즉석에서 바로 코끼리를 도살한 주민들은 사이 좋게 고기를 나눠 먹으며 모처럼 만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밥은 아마도 흐믓하게 지켜봤을 겁니다.

밥은 귀국 후, 사냥 과정과 주민들의 도살 장면을 빠짐없이 촬영한 화면을 '휴가 동영상'이라며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밥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잔인한 살육이라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고,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 학대라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당황한 밥은 "아프리카의 야생 코끼리들이 농작물을 망치는 바람에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코끼리 잡아줘서 사람들은 농작물을 지킬 수 있었고, 또 코끼리 고기를 나눠 먹을 수 있었다"면서 자신이 뭘 잘못했냐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네티즌 수사대는 밥은 미 해병대 출신에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출신임을 밝혀냈고, 이를 근거로 밥의 이런 항변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몰아 붙였습니다.

과연 밥의 항변은 어디까지가 변명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짐바브웨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짐바브웨의 코끼리는 10만 마리가 넘는데 이는 보호구역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3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보츠와나,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 등 다른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정부와 주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식욕의 코끼리 먹여 살리기도 쉽지 않은 데다 보호구역을 넘어 마을이나 농경지로 넘어 오는 코끼리들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짐바브웨 정부는 지나치게 불어난 코끼리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연간 도살량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코끼리 수를 줄이기 위해선 매년 최소 6천 마리를 도살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도살된 코끼리의 일부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대부분은 '빌통'이라 불리는 육포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코끼리 육포를 생산한다고 해서 코끼리 개체 수에 타격을 입히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코끼리 도살'이 일종의 '필요악'인 상황에서 자기 돈 써가며 코끼리 사냥을 한 밥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이 좀 억울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찰나의 유희를 위해 짐승의 생명을 가볍게 빼앗고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이를 공개적으로 자랑한 자신의 몰지각한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쏟아낸 쓴소리의 의미를 밥은 잘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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