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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의 기도…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취재파일] 대통령의 기도…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이 글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며칠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본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과 기사가 생각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ABC TV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위기가 최근 들어 나로 하여금 더 많은 기도를 하게 합니다.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모든 미국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강건함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국가 조찬기도회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집트의 폭력사태가 하루 빨리 끝나기를, 이집트인들의 권리와 신념이 실현되기를, 그래서 마침내 이집트는 물론 전 세계에 더 나은 날들이 밝아오기를 기도합시다."

"아리조나주 투산시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은 저의 신앙을 더 깊게 했습니다. 마크 켈리!(총격사건 때 피격당한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의 남편) 저와 제 아내 미셸은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정당에 속해 있다거나, 인생의 어느 구비를 지나고 있는지 상관없이 우리들 중에 누구도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한 줌 모래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실패와 실망은 인간의 순간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게획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믿음은 저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솔직히 저는 기독교적인 집안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아버님은 무신자였고, 어머니 역시 조직화된 종교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제가 아는 한 가장 영적인 분이기도 하셨죠. 늘 저에게 남녀 평등에 대해서, 윤리적인 삶에 대해서, 신념에 충실한 행동의 필요성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곤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같은, 독실한 신자의 신앙고백같은 말 끝에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유머도 섞었습니다.

"제 두 딸아이가 자라는 모습 역시 저를 점점 더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제 기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당면한 도전과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곤 하죠. 물론 때로는 말리아(첫 딸)가 남학생들이 우글대는 댄스파티에 처음으로 갈 때는 저에게 참을성을 달라고, 말리아가 춤을 추고 있을 때 그 아이가 입고 있는 치마가 점점 더 길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바마 대통령이 스스로 기독교도임을 스스럼없이 강조하고 내비치고 있지만, 이상한 것은 아직도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적 정체성을 의심하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인의 1/5이 아직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기독교도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비율도 2009년 3월 48%에서지난해 8월에는 34%로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심하게는 미국인의 43%가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일요일마다 오바마 대통령 가족이 예배 보는 모습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대통령에 당선돼서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DC 안의 어떤 교회를 다닐까 하는 부분도 관심사였었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특정 교회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군기지 안의 교회를 다니다가, 가끔씩 워싱턴DC 안의 교회 몇 군데를 돌아가며 방문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에 올랐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여서인지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나라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미국인의 85-90% 정도가 기독교도라고 합니다. 그 중에 80%가 신교도이고 20%정도가 카톨릭이라고 하죠. 유대교가 3%정도, 이슬람교와 불교의 세는 아주 미약한 실정입니다.

아직도 미국인들의 40%가 일요일이면 교회를 꼬박꼬박 다닌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후세인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이 포함된,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흑백혼혈의 대통령 오바마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이 곳 저 곳에서 본 대통령의 사진들 가운데 인상적인 장면들이 교회안에서 기도하는 모습들입니다. 대통령들이 기독교도고, 국민들 대다수가 기독교도인 미국에서 오바마의 존재는 이렇게 이방적으로 비쳐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통령의 정치 행위와 정책 결정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와 불교가 양립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한 조찬 기도회 때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일었던 논란이 그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교도인 대통령이 등장하면 청와대 안에 탑이 생겼다 하고, 어느 스님이 들어가 법회를 했다고 하고 기독교도인 대통령이 집권하면 청와대 안에서 찬송이 들리고 어느 목사님이 청와대 경내 예배를 주관했다고 하고 이런 저런 종교적 소문들이 사실처럼 퍼지고는 합니다. 다만 그것이 대통령이라는 헌법적 지위에, 그가 행하는 정치 행위와 정책 결정의 본질을 흐려서도 안 되겠죠. 대통령 역시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 나가되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도 필요할 듯 합니다.

기독교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진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워싱턴 대성당에 전시돼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배 모습 가운데 가장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1979년 미국 외교관 52명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됐을 때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회에 참석한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대통령의 고뇌를 보여주는 동시에 권력자인 대통령도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그저 신에게 의지하고 간구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상징하는 듯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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