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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엘리자베스 테일러, 앤디 워홀 그리고 휴 그랜트!"

대중이 원하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한 인물들

[취재파일] "엘리자베스 테일러, 앤디 워홀 그리고 휴 그랜트!"

"엘리자베스 테일러, 앤디 워홀 그리고 휴 그랜트!"

5, 60년대를 풍미한 세기의 여배우와 전설의 팝아트 대가, 그리고 여전히 잘나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배우. 이 세 사람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일본 지진과 리비아 내전 소식이 시시각각 국제 뉴스를 쥐락펴락하던 지난주,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관련된 뉴스가 지구촌 사람들을 술렁이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관능미를 때로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뭇 남성들을 잠 못들게 했던 여배우의 죽음이니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와 명예는 죽은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드러난다고 하는데 테일러에 대한 세계인들의 사랑과 관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 가운데 테일러의 초상화가 다음달 뉴욕에서 경매에 부쳐진다는 소식도 포함돼 있습니다.



청록색 배경에 빛나는 피부, 바이올렛 색의 눈동자 그리고 붉은 입술이 포인트인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상 낙찰가는 최소 2천만 달러, 우리돈 23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후 한창 주가가 오른 테일러의 초상화이니 만큼 , 경매 당일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가의 몇 배로 치솟을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이 이 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 보다 큰 이유는 콜렉터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앤디 워홀이 남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앤디 워홀이 1963년에 완성한 이 작품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의 애칭을 따 'Liz # 5'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앤디 워홀이 당시 최고의 대중 스타인 테일러를 모델로 만든 13개 작품 가운데 한 점입니다.

1963년은 테일러가 '버터필드8' 으로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직후이며 팝 아트의 대표 기수 앤디 워홀 역시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입니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뉴욕에 '팩토리'로 부른 스튜디오를 만들고 유명인사와, 섹스, 스캔들 같은 대중 문화 속 이미지를 미술작품으로 승화 시킨 앤디 워홀에게 당대 최고의 스타인 테일러는 좋은 소재가 됐고, 테일러를 모델로 워홀은 13개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다음달 경매에 나올 작품도 그 가운데 한 점입니다.

워홀은 미술계에서 금기시 해온 복제에 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었습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와 같습니다. 대통령에게도, 마릴린 멀로에게도, 또 길거리의 갱에게도 코카콜라는 다 똑같습니다. 돈을 주고 사면 더 많이 살 수 있을 지언정 한 병의 콜라는 똑 같습니다. 팝 아트는 근엄한 게 아닙니다. 평등하고 쉬운 겁니다."

이런 소신과 사뭇 달리  워홀은 자신의 작품을 상당히 고가에 팔았고, 일찌감치 상업적 예술가로 성공했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 휴 그랜트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영국의 훈남배우 휴 그랜트는 평소 두주불사(斗酒不辭) 주당으로 유명합니다. 그랜트가 사랑하는 '주(酒)님' 때문에 횡재를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예술 작품에 문외한인 그랜트가 지난 2001년 우연한 기회에 앤디 워홀이 남긴 엘리자베스 테일러 초상화를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랜트는 이틀 연속 술을 마신 뒤 이른바 '떡 실신'상태였습니다.

술김이었는지 그랜트는 갑자기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으로 향했고 경매로 나온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초상화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지름신'이 강림한 겁니다.

동행했던 비서에게 "무조건 사라"고 명령했고 겁 없는 비서가 2백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38억 원을 불러 그 작품을 손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 술이 깬 그랜트는 2백만 파운드를 단번에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랜트가 구입한 작품은 6년 뒤에 1천3백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46억 원에 되팔았고  208억 원의 매매 차익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보통 고가의 경매품을 낙찰받은 사람의 신분은 비밀에 붙이는 게 일반적인데 너무 기뻤던 그랜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면서 '대박 신화' 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세 사람이 동시대인들도 아니고 개인적인 교분을 나눴던 것도 아니지만, 대중의 사랑 속에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또 대중이 원하는 가치 있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같은 줄에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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