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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 닫은 저축은행, 아들에게 '펑펑'

[취재파일] 문 닫은 저축은행, 아들에게 '펑펑'

지난 2008년 문을 연 한 갤러리가 있습니다.

갤러리 대표는 부산저축은행 계열 은행장의 아들 김모 씨로 전시회장도 은행 건물 5층에 있습니다. 김 씨는 중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아버지의 도움으로 갤러리를 열었지만 지난해 11월, 2년여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달 부산 저축은행 그룹 계열 은행들이 줄줄이 영업정지 조치를 당했습니다. 예금 인출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가지급금이라도 받기 위해 은행 앞에 예금주들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던 모습 기억하실 겁니다. '은행에 돈이 없다'... 서민 예금주들의 속은 타들어 갑니다.

부실 경영을 탓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런 와중에 이 갤러리 개관식 전후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은행에서 갤러리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됩니다.

이 갤러리 대표 김 씨의 아버지는 부산2저축은행의 은행장으로, 직위를 적극 활용(?)해 아들 갤러리에 수십억 원을 대출해 줍니다. 아버지만이 아닙니다. 같은 계열사인 부산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중앙부산저축은행에서도 수십억 원씩 대출해 줍니다. 각 은행장들은 아버지 김 씨와 동서지간이거나 고교 동문 관계로, 역시 은행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대출해 줍니다.

실제 대출을 받은 경위를 살펴보면 기가 찹니다. 은행이 자금을 빌려줄 때는 담보에 맞는 가격인지, 갚을 능력은 있는건지..등등 따져볼게 많았을 텐데 이 갤러리는 너무도 쉽게, 원스톱으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여신심사, 감정평가 같은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감사 담당 직원들도 모두 한통속이었습니다. 은행은 작품 가격을 오히려 부풀려 더 많이 대출해 줬습니다. 구입 가격이 14억 원인 그림 1점에 23억 원을 빌려줬습니다. 또 이미 다른 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는 그림을 또다른 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이중, 삼중으로 돈을 빌렸습니다. 이렇게 시장에서 84억 원이면 살 수 있는 그림 23점을 위해 갤러리는 362억 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트릭을 한가지 더 썼습니다. 저축은행들은 직계 존속에게 신용공여를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은행장인 아버지 김 씨는 법적으로 아들에게 돈을 바로 빌려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행 홍보실장의 명의로 또다른 유령 갤러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아들 갤러리와 형식적으로 계약 관계를 맺도록 합니다. 은행들은 이 유령 갤러리에 앞서 설명한 362억 원을 대출해주고, 아들 김 씨의 갤러리는 이 유령 갤러리로부터 자유롭게 이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은행 홍보실장은 이른바 갤러리의 '바지사장'으로 일하면서 갤러리와 관련한 업무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법에 편법으로 문을 연 이 갤러리는 결국 문을 닫았고 이 가운데 160억 원은 갚을 방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절차도 무시하고, 서민들이 맡긴 돈을 제 돈처럼 마음대로 쓴 이 은행들은 지금 영업정지 상태입니다.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가 160억 원에 그치지 않았기에 오늘의 예금인출 사태를 불러왔고, 그리고 은행들의 부채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 됐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은행장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경찰에 이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검찰에서 은행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은행 경영진들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닌가 봅니다. 수사가 끝나면 어떤 결론이 날까요. 그동안 얼마나 방만하게 경영을 했을까요. 은행장들은 당시 그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많은 자금을 대출해 줬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서민 예금주들의 절망은 더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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