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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택시기사들의 자리다툼…죽음으로까지

[취재파일] 택시기사들의 자리다툼…죽음으로까지

지난주 수요일(23일) 서울의 한 대형호텔 앞에서 참변이 벌어졌다. 대리기사 2명이 7.5미터 난간 아래로 떨어져 숨진 것이다. 오후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건이 이미 새벽에 벌어진 터라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현장은 이미 정리돼 있었다. 하지만 부러진 나뭇가지와 혈흔 등으로 보아 상황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경찰, 동료 운전자들이 이야기한 상황을 정리하자면 대강 이렇다. 새벽 6시50분쯤 모범택시 운전기사 67살 강모씨가 기사대기실(택시 기사 대기실이 아니라 호텔 임원 기사 대기실인데 새벽에는 그들이 이용하지 않으니까 택시 기사들이 이용한다고 한다)에서 자고 있는 역시 같은 기사 56살 이모씨를 깨워 밖으로 불러냈다.

이유는 이씨가 자신의 차 앞에 차를 세워놓고 시동을 꺼 놓고 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것. 정차 순서대로 손님을 태워야 하는 택시의 규칙상 영업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런 말싸움이 격하게 이어졌고 강씨와 이씨는 결국 난간에서 떨어져 이런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동료기사들은 괜한 문제가 될 것 같은 마음에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 2명이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이유로 다퉜고 택시 운영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겠냐며 씁쓸해했다.

동료 기사들은 하나 같이 경기불황으로 택시 손님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요금이 비싼 모범택시 이용객들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날도 현재 3시간째 서 있다며 앞차 언제 나가는 것만 기다리다 보면 하루가 가는 날도 있다고 담배를 꺼내는 기사도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한 모범택시를 가리키며 "저 차가 7천5백만 원 들여 뽑은 차인데 가스값, 기사밥값 빼면 본전이나 건지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90년대 초 고급택시를 표방하며 등장한 모범택시는 승차거부 등 그 동안 택시기사들이 부린 횡포도 없고 말끔하게 유니폼을 입은 기사가 대형 세단차량을 몰아 이미지도 좋았었다.(물론 요금이 비싼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하지만 이제 모범택시를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줄었고 모범택시만의 서비스였던 콜 시스템이나 신용카드 결제는 일반 택시들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이용객들을 타깃으로 전화했지만 공항들은 콜밴이라는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몇 년 전부터 택시기사들의 공동의 적(?)인 대리기사까지 등장하면서 그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들었다. 현재 모범택시 등록대수는 천8백여 대로 지난 2005년 3천6백 대에서 6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사들 서로가 각박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기사의 싸움에서 이 비극은 벌어졌지만 이런 제반의 조건들을 보면 이들이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더욱이 5, 60대로 나이까지 지긋하신 분들이 택시 정차장소 문제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싸움이 벌어지게 된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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