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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리비아 취재기 2 - 토브룩의 데자뷔

[취재파일] 리비아 취재기 2 - 토브룩의 데자뷔

카다피가 있는 수도 트리폴리와 시민군의 본부가 있는 벵가지, 그리고 동북단에 위치한 토브룩은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리비아의 도시들이죠. 그런데 이들 도시의 이름이 뭔가 데자뷔(déjà vu) 현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아주 중요한 도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이집트를 근거지로 삼아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을 압박하자,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독일 최고의 육군 사령관 롬멜을 파견합니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롬멜은 1941년 트리폴리에 입성해 전차 기동전을 펼치면서 연합군을 압박합니다. 롬멜이 연합군을 몰아갔던 동선이 바로 트리폴리에서 벵가지, 토브룩으로 이어지는 전선입니다. 동쪽 끝 토브룩이 롬멜에 함락당하면서 영국은 수에즈 이남의 이집트로 쫓겨갔고, 이탈리아는 독일과 강력한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트리폴리에서 벵가지를 목표로 동진하는 카다피의 모습과, 벵가지를 탈출해 토브룩으로 피난을 가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롬멜의 대전차군단이 떠올랐습니다.

리비아 동북부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토브룩은 총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전투가 치열했던 서부의 전선과는 거리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긴장감은 적을 듯 했지만, 벵가지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널려있는 AK-47 자동소총은 이곳 역시 리비아의 현실에서 멀어질 수 없다는 점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알 자지라 방송의 카메라 기자가 벵가지에서 카다피 지지세력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시민군은 곧바로 외신기자들이 묵고 있는 호텔의 경비를 강화하고, 취재팀이 호텔을 나설 때마다 자신들이 경호를 해주겠다며 따라 나서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토브룩에서는 점심시간이 끝나는 매일 오후 3~4시만 되면 누구랄 것 없이 시내 한 가운데의 슈하다 광장에 모여서 反카다피 집회를 개최합니다. 보통 리비아에서는 여성들이 밖에 돌아다니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회에는 니캅이나 부르카로 전신을 가린 여성들과 학교 단위로 참석하는 어린 아이들도 많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든 아니면 상점을 지키고 있든, 토브룩 시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카다피 정부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굳은 의지를 보며 내전이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카다피는 절대 스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국적군의 군사개입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리비아의 내전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럴 경우 카다피를 놓고 워낙 다른 정서를 갖고 있는 리비아의 서부와 동부가 분리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카다피든 시민군이든 리비아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리비아 국민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는 있는 한반도 출신의 외신기자 입장에서는 또 한번 일깨워진 데자뷔(déjà vu) 현상이 과연 벵가지와 토브룩 시민들을 위해 올바른 일인지에 대해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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