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리비아 취재기1 - 벵가지
안소니 퀸 주연의 <사막의 라이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절, 이탈리아의 침공에 맞서 20여 년 동안 저항을 했던 리비아 베두인족의 투쟁을 그린 영화죠.
카다피와 시민군 모두 그 베두인족의 후예답게 황량한 사막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리비아는 일단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리비아 서부에 있는 수도 트리폴리는 카다피 정부가 인정한 외신기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들어가 봤자 행동이 통제되는 상황이어서 제2의 도시이자 시민군의 본부가 있는 동부의 벵가지가 주된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카다피 군의 가장 직접적인 목표가 돼서 치열한 탈환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벵가지는, 이미 그 이전부터도 전세계 외신 기자들의 전진기지여서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벵가지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집트 카이로를 출발해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 도로를 자동차로 9시간 동안 달려야 했습니다. 국경도시 살룸에서 이집트 출국 수속을 마친 뒤, 리비아 입국장까지 1km 남짓의 거리는 100km 이상의 거리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리비아 입국장은 의외로 평온했습니다. 국경을 관리하고 있는 시민군 입장에서는 외신 기자들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됐을 테니 삼엄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벵가지는 국경을 통과해, 자동차로 또 7시간을 달려야 합니다.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는 완만한 구릉이 이어져서 얼핏 보면 60~70년대 한국의 농촌 마을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데, 중간 중간에 거쳐야 하는 10여 군데의 중무장 검문소가 교전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16시간의 긴 자동차길 끝에 도착한 벵가지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돼 불편하기는 했지만, 생필품을 비롯해 물자 부족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게다가 마주치는 시민들 모두 외신기자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친절함으로 대해줬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카다피에 대한 증오심과, 승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쳐났습니다. 어떻게 40년 이상을 참고 살아왔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취재환경은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나 들고 있는 총은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전 세계에 1억 정 이상 팔렸다는 AK-47(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은 시민군들에게 아주 일상적인 휴대품처럼 보였습니다.
이 자동소총의 총구 방향이 제게로 향하거나, 지나치면서 스치기라도 할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죠. 실제로 처음 벵가지에 도착해서는 수시로 들리는 기관총 소리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동차를 타고 가는 젊은이들이나 경비를 서는 시민군이나 기분이 내키면 그냥 하늘을 향해 쏘아대는 것이었습니다. 대규모 집회라도 열릴라 치면 사방에서 쏘아대는 AK-47 소총 소리가 귀를 때리기도 하는데, 실탄을 그렇게 소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여튼 이 총소리는 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AK-47 소총 소리를 들으며, 리비아의 미래가 그것 때문에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각국의 대립도 결국은 무기산업의 이해관계일 테니까요. 무기산업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리비아 국민들의 미래보다는, 카다피 정부가 유지되는 방안과 시민군이 승리하는 방안, 그리고 장기 내전의 분쟁지역화 방안 중 어느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를 따져보는 게 당연하겠죠.
무기가 있어야 싸울 수 있지만, 그 무기 때문에 싸움이 끝나지 않는 상황.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리비아 사막 베두인족의 슬픔과 고통이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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