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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가 폭등…등골 휘는 농민

[취재파일] 유가 폭등…등골 휘는 농민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기름값 걱정에 요즘 차 몰기가 부담스럽고 시동을 켜면 기름 소모량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셀프 주유소 뿐 아니라 기름값이 1원이라도 싼 곳을 찾게 되고 공회전을 줄이기 위해 잠시 주정차 때도 일단 시동을 끄게 되더군요.

장 볼 것도 없는데 바람 쐰다는 기분으로 자주 다녔던 마트행도 줄이고 걸어서 20분 이내 거리는 가급적 두 발로 다니고 있습니다. 기름값 폭탄에 맞서 도시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것들 뿐입니다.

하지만 기름이 생업과 직결된 시설 재배(하우스) 농민들의 답답한 심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유를  때 난방을 하는 채소 재배 농민들은 말그대로 유가 폭등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충남 청양과 공주 지방은 시설하우스를 이용해 토마토와 오이를 키우는 농가가 많이 있습니다. 품값도 건지기 힘든 벼농사 대신 1년에 두세 차례 수확이 가능한 채소 농사로 방향을 튼 것이죠.

지난주 찾아간 청양의 한 토마토 농장. 예년 같으면 어른 주먹만큼 자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야 했지만 올핸 생육이 제대로 안 돼 크기도 작은 데다 잎이 누렇게 마르기까지 했습니다. 오이 농장도 사정이 마찬가지여서 수확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고 찡그리고 어두운 농민들의 얼굴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난방유로 사용하는 면세유 값이 1리터당 지난해 800원에서 1천 원으로 200원 가량 올라 예년에 비해 난방을 제대로 못해주다 보니 생육에 지장을 끼쳤다는 설명입니다.

토마토와 오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섭씨 최저14~5도를 유지해줘야 합니다. 지난 겨울 한 달 이상 한파가 계속돼 기름을 때도 적정 온도를 올리기가 어려웠다는 얘기입니다.

비닐하우스 12동(1동 면적:660제곱미터)에 토마토 농사를 짓는 유모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 초까지 난방비로 2천6백만 원을 썼다고 합니다. 지난해 보다 520만 원이 더 들었는데 강추위탓에 효과는 별로 없었죠.

기름을 아끼기 위한 농민들의 보조 난방법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비닐하우스 내에 2~3겹의 보온덮개를 씌우는것입니다. 또 전기를 활용한 방열등을 달아놓기도 하고 심지어 일부 딸기 재배농가들은 LP가스통에 불을 붙여놓거나  수백 개의 대형 촛불을 켜놓기까지 합니다.

난방비를 줄이는 만큼 적자폭이 줄기 때문에 하루종일 농장에 살면서 온갖 궁리를 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유례 없이 장기간 국내 축산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구제역의 여파는 채소재배 농민들까지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구제역, AI여파로 고기소비가 줄고 각종 모임과 축제 등이 취소되거나 축소되면서 상추, 오이값이 30~40%나 폭락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신선채소값은 여전히 비싼데, 산지 가격은 지난해보다 절반 가량 폭락했다는 사실이 참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인정해야할 현실이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누군가 폭리를 취했다고 봐야겠죠.

기름값 폭탄에 작황 불량, 가격 하락까지 3중고를 겪는 농민들은 문밖으로 찾아오는 봄 햇살도 느낄 겨를없이 등골이 휘고 있습니다.

산유국에서 재채기만 해도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우리에겐 독감 수준으로 다가옵니다. 기름의존도를 조금씩 줄여나갈 대체에너지 발굴과 연구에 과감한 투자와 열정을 쏟을때 서민과 농민들의 굽은 등골이 다시 곧게 펴지지 않을까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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