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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수리가 돌아올 날은?

[취재파일] 독수리가 돌아올 날은?

지난달 11일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독극물에 중독된 독수리 발견!" 전문 수의관들로 구성된 구조센터 직원들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지요.

신고전화는 정확했습니다. 서산시 운산면의 한 논에 몸집이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독극물에 중독돼 발견됐습니다. 맥이 풀린 듯 날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독수리를 구조대원들이 신속히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옮겼지요.

독수리 주변에서는 농약에  희생된 기러기 사체들이 발견됨에 따라 독수리가 기러기 사체를 뜯어 먹고 2차 오염으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야생동물 구조센터 직원들은 방사선 및 혈액검사를 하고 위장관 세척술을 통해 독수리 식도와 위장관에 존재하는 독극물을 제거했습니다. 약 3주간 수액을 놓고 먹이로 닭고기를 제공하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자 독수리는 곧 건강을 회복했고  기력도 되찾아 갔습니다.

야외 계류장에서 비행 훈련도 병행하며 자연으로 돌아갈 몸만들기 집중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조난당하거나 독극물 중독 등 밀렵으로 부상당한 야생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된 구조센터에는 독수리보다 한 달 전에 들어온 털발 말똥가리 한 마리도 있었습니다.

말똥가리 역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활 훈련이 한창이었죠. 말똥가리 비행 훈련은 특이합니다. 낚싯줄로 발목을 묶고 하늘로 날려 보내면 낚싯줄이 다 풀릴 때까지 비행을 한 뒤 땅에 내려앉는 방식이었습니다. 몸집이 독수리보다 훨씬 작아서 이런 방법이 가능한 거죠.

구조센터는 수요일 오후, 드디어 독수리와 말똥가리를 야생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돌려보낼 장소를 선택하는 데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높고 강한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 등 비행 장애물을 피해야 했습니다. 결국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인 천수만 간척지가 채택됐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들녘... 가릴 것 없이 탁 트인 시야, 오랜만에 비행을 하는 독수리와 말똥가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습니다.

한 달간 자식처럼 보살핀 연구원들과의 작별은 너무 짧아 싱겁기만 했습니다. 새장을 열자마자 큰 날개를 한두 번 퍼드덕 거리다가 이내 비상, 멋진 모습을 하며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연구원들은 독수리 날개에 파랑색 번호표를 붙여놓았고 몸속에도 마이크로 칩인 Pit Tag을 심어 놓았습니다. 파랑색은 우리나라 고유의 색깔로 독수리 이동 경로와 개체 식별을 위한 장치들이죠.

말똥가리에는 최첨단  GPS발신기를 달아 놓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 신호를 보내도록 설정됐고 위성이 신호를 받아 지상 기지국으로 말똥가리의 이동 정보를 제공하게 됩니다.

연구원들은 말똥가리가 어떻게 이동하고 번식지는 어디인지 등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활용되는 위성은 프랑스 아르고스 위성이라는 군요.

독수리와 말똥가리의 활기찬 날개짓을 지켜보던 한 연구원은 "북녘 하늘인 몽골로 무사히 올라갔다가 내년 겨울 다시 와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작별사를 했습니다.

독극물, 밀렵이라는 나쁜 기억 대신 따스하고 정성어린 보살핌은 오래오래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독수리와 말똥가리가 올 가을쯤 다시 돌아올까요? 

그런 기대감에 앞서 독극물, 밀렵이 먼저 사라져야겠지요. 마음 편하고 건강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되는 날, 먼 길을 떠난 독수리, 말똥가리가 이 산하를 기억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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