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다음주 16일에 올리는 오페라 '파우스트'의 기자간담회에 다녀왔다. 이번 '파우스트'는 한국인 테너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주역 데뷔한 김우경 씨가 출연한다. 메피스토펠레 역에는 거의 '전설' 급인 사무엘 레미가 캐스팅돼 오페라 팬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김우경 씨를 인터뷰하고 쓴 글을 올린다. 이번달 예술의전당 월간지에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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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우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그가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2004년이었다. 그는 이후 계속 나의 관심 인물이었지만, 그의 무대는 계속 나를 비껴갔다.
2005년 여름, 김우경이 출연했던 ‘유럽 오페라 주역 초청 갈라 콘서트’를 놓쳤던 게 처음이었다. 2007년 1월,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한국인 테너로는 사상 첫 주역으로 데뷔했지만, 뉴욕은 너무 멀었다. 나의 ‘제보’로 SBS 뉴욕특파원이 취재한 리포트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2007년 1월 11일 8뉴스)
김우경은 2007년 여름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리골레토’ 주역으로 데뷔했고, 2008년 가을에는 ‘라 보엠’을 공연했다. 나는 이즈음 연수 때문에 영국에 있었지만, 출입국 몇 일 차이로 그의 공연을 놓쳤다. 연수 후엔 한동안 문화부 아닌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느라 바빠서, 국내에서 열렸던 김우경-홍혜경 듀오 콘서트도, 리사이틀도 모두 가보지 못했다.
그 김우경이 3월 국립오페라단의 ‘파우스트’로 한국에 온다. 서두가 길었던 건 그만큼 내겐 놓칠 수 없는 공연이라는 뜻이다. 인터뷰도 하리라 벼르던 참에 예술의전당 월간지 원고 청탁을 받았으니, 바로 ‘예스!’를 외칠 수밖에. 설 연휴 직후, 도쿄 신 국립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기 위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김우경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독일 문호 괴테의 원작에 프랑스 작곡가 구노가 곡을 붙인 오페라 ‘파우스트’. 국립오페라단 이소영 단장은 올해 공연계획을 발표하면서 “김우경이 ‘파우스트’라서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 그래도 나는 ‘파우스트’가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 아닐까 궁금했었다.
그가 ‘파우스트’ 중 ‘정결한 집’을 부르는 미리암 헬린 콩쿠르 실황을 유튜브에서 보고 수려한 가창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 http://www.youtube.com/watch?v=m2dp8dJ4inE) 그는 콩쿠르 출전곡으로 ‘파우스트’의 아리아를 즐겨 불렀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김우경의 테크닉은 완벽했고, 파우스트 해석은 더 이상 따를 사람이 없을 만한 것이었다’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제가 콩쿠르에서 ‘파우스트’의 아리아를 자유곡으로 많이 부른 건 사실입니다. 이른바 ‘18번’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가 저한테 잘 맞고 반응도 좀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는 2년 전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처음 ‘파우스트’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직접 연출까지 맡은 이소영 단장은 처음부터 ‘김우경의 파우스트‘를 염두에 뒀다고 했다. ‘타이틀 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은 처음 이 작품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왜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하세요?’ 했어요. 사랑하고, 슬퍼하고, 죽고,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하시지, 하고요. ‘파우스트’는 다른 작품에 비해 어렵고 흥행성이 없잖아요."
파우스트’는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다.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들이 훨씬 자주 공연된다. ‘사랑하고, 슬퍼하고, 죽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매력은 넘친다. 자주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더욱 기대가 된다.
파우스트에도 사랑하고, 슬퍼하고, 죽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여주인공이 죽는 건 비슷한데요?”
그렇기는 한데, 파우스트는 좀 달라요. 역 자체가 사랑과 죽음뿐 아니라 신과 자연, 우주까지, 아주 광대한 얘기를 표현해 내야 하거든요. 저는 ‘파우스트’를 연기하다 보면 ‘라 보엠’이나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슴이 에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김우경 자신도 앞서 ‘연기’라는 말을 썼지만, 오페라 가수에게는 ‘연기’도 중요하다. 특히 최근의 오페라 연출은 점점 더 오페라 가수의 비주얼과 연기력을 중시하는 추세다.
저희 선생님들 세대에는 ‘노래만 잘하면 연기 필요 없다’고 했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키 크고 몸매 좋고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잘 나가요. 그냥 서서 노래만 해도 됐던 ‘파바로티의 시대’는 끝난 거죠. 그래서 한국인들이 더 힘들어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본토 사람들 같으면 작은 손짓 몸짓 하나로도 연기가 끝나는 걸 온몸으로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는 연기 공부를 위해 평소에도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서 보고, 연기 잘한다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한다면서, 연기 하나도 안 하는데 잘 한다는 얘기 듣는 사람이 있고, 연기 많이 하는데도 못 한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 있더라고 했다.
연기를 ‘그냥 하는데 잘 하는 것’이 감동을 주더라고요. 오버 액션을 한다든지, 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나게 하려고 연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진심’이 아닌 게 나타나요. 결국은 마음이 전달되는 게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해 연기한다면 서 있는 게 구부정하다 해도 몸짓 하나, 눈짓 하나로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그래서 ‘노래 잘하면 연기 필요 없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고 했다. 연기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목소리 연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몸으로 하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목소리 연기’가 그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목소리로 사랑과 슬픔, 죽음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08년 김우경 리사이틀을 다녀온 관객이 그가 부른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두고 ‘자막이 없어도 노래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좋았다’고 평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의 리사이틀은 마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과 같은 날 열렸고 눈까지 내렸지만,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진심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 반했던 것이다.
리사이틀에서도 훌륭한 역량을 보여줬지만 김우경은 스스로 말하듯 ‘콘서트 가수’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다. 줄곧 오페라 가수로 활동해온 그가 한국을 떠난 지 11년이 흐른 후에야 고국의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된 건 한국의 열악한 오페라 제작 환경 탓이기도 하다. 보통 2, 3년치 공연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그에게 두 달 후 스케줄을 물어보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김우경의 ‘파우스트’를 빨리 보고 싶다. 진심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를 무대에서 듣고 싶다. 나에게는 2004년부터 7년을 고대해 온 만남이다. 이번에는 꼭 김우경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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