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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만삭 딸의 사망과 아버지

[취재파일] 만삭 딸의 사망과 아버지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아시다시피 출산을 한 달 앞둔 여성이 자신의 집 욕조에서 '불편한 반신욕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처음 이 사건이 세인의 관심을 끈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력한 용의자로 의사인 남편이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관심 수준을 넘어 일정 기간 일상의 화두가 된 데에는 경찰과 남편 사이에 벌어진 진실공방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도 지인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남편이 살해한 거지?", "경찰이 애먼 사람 잡는 거 아냐" 등등 말이죠.

경찰은 물적 증거와 함께 논리적 추론을 통해 남편을 진범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보내온 '손으로 목졸려 숨진 것 같다'는 소견서, 남편의 얼굴과 팔 등속에 난 긁힌 상처, 숨진 부인의 손톱 밑에서 검출된 남편의 피부 조직, 고개를 떨군 채 숨진 부인의 눈가에 오히려 이마쪽으로 흐른 핏자국, 안방의 침대와 이불 등에 묻은 또 다른 핏자국,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보이지 않는 CCTV 자료...

경찰이 내놓은 "남편이 부인과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부인을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욕실로 옮겼다"는 결론은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나온 거지요.

반면, 남편은 지금까지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인의 죽음을 몰랐다는 겁니다. 얼굴과 팔 등속에 난 상처는 자신이 건성 피부병이 있어 긁다가 난 상처이고, 부인의 손톱 밑에서 검출된 자신의 피부 조직은 부인이 자신을 긁어주다 자연스레 끼게 된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부인과는 연애 결혼을 한 사이라 싸울 일도 없었다고 했고요. 오히려 부인은 사망 전 다이어트를 한다며 주로 과일만 먹었고, 이로 인해 생긴 빈혈로 쓰러졌다가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경찰 측의 논리와 남편 측의 논리만 놓고 본다면 저로선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법원도 처음에는 '남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더 수사해보라'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가 결국에는 영장을 발부했거든요.

그러나 '영장 발부=유죄'라는 생각은 '법의 정신' 상 금물입니다. 물론 평균적으로는 이 등식이 성립하긴 합니다. 하지만 형법은 통계학이 아닙니다. 개인의 유무죄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검토해서 개인마다 판단해야 하는  '맞춤형 보고서'이기 때문이지요.

지리하고 험난하고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건 그래서일 겁니다.  수사기관이 이긴다면 남편은 최고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겠지만 남편이 이긴다면 무죄로 풀려날 겁니다.

경찰이 탄탄하게 수사한 자료는 이제 검찰로 넘어갔고, 검찰은 구속 상태에서 남편을 수사할 겁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자백'도 받아낼 수 있을 거라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요.

남편 측 역시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겁니다. 만약 기소 전 단계에서 '자백'을 하더라도 법정에서 뒤집으면 또 한 차례 파문이 일겠지요. 정말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입니다.

아, 마지막에 적는 말이라 사족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이 말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취재 과정에서 망자(亡者)의 아버지와 여러 번 통화를 했는데요, 제 자신을 그렇게 객관화하기 어려웠던 취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만삭인 딸이 단순 사고사로 숨졌더라도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고, 애지중지 키운 딸이 사위에게 살해됐다고 생각해도 몸을 추스리지 못했을텐데, 그분은 참 강하고 의연한 분이셨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분의 가슴 안에는 만삭 딸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깊이 잠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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