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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혈변'(血便)은 알고 있다

[취재파일] '혈변'(血便)은 알고 있다

절도범들 사이에 범행장소(화장실이 아닌 정말 그 장소)에 대변을 보고 오면 경찰에 잡히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실제도 그럴 것이 범행 장소에 남는 지문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은 경찰이 범인을 잡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DNA를 뽑아내 기존의 범죄 용의자군(群)과 대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변에서는 DNA를 검출해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때문에 절도범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미신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대변' 때문에 한 절도범이 경찰에 덜미가 잡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2일 변호사 사무실 전문털이범 38살 박모 씨를 검거했다. 박 씨는 지난 2005년부터 서울 서초동과 경기도 고양시, 안산시 등 수도권 일대 변호사 사무실과 학원 등에서 현금, 귀금속 등 5천여만 원 어치를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박 씨는 주로 중소로펌을 노렸는데 이런 변호사 사무실을 주로 범행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했다. 문 하나만 열고 들어가면 여러 변호사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란다. 한 가게에 여러 상점이 있어서 정문만 열면 힘 안 들이고 많은 수확물(?)을 거둘 수 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

박 씨가 잡히게 된 경위는 이미 말했듯 대변 때문이었는데, 어김없이 물건을 훔치고 난 뒤 박 씨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 한 구석에 대변을 보고 나왔다. 하지만 박 씨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이 대변이 '혈변'(血便)이었던 것이다.

박 씨는 그 혈흔에 대한 DNA 감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밝혀진 사실도 모르면서 절도범의 속설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찰에서 박 씨는 절도범의 속설 때문이 아니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사무실에 대변을 봤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박 씨가 다른 사무실에서도 변을 본 적이 있다며 박 씨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경찰은 현재 박 씨가 지금까지 백여 곳 이상을 털었다며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박 씨는 그 동안 수백, 수천만 원 어치의 물건을 훔치고 짜릿한 마음에 현장에 대변까지 보고 여유있게 범행 현장을 빠져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 속설 때문에 잡히게 된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른 아침 출근해 도둑에게 털린 사무실을 보고 놀란 마음에 영문 모를 대변까지 봐야 했던 피해자들은 과연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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